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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Mar 28. 2021

의심의 시작

배의 통증은 병원에 방문했던 그 날 저녁 즈음에는 나아졌고, 통증이 사라졌으니 물혹으로 변신을 했든 터져버렸든 뭔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추정했다. 나는 과성숙 난자라도 배출되었다면 물혹보다는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이번 사이클은 안 된 것 같다고 자가 진단을 내리고 병원은 다음 생리 시작하면 가서 다시 배란유도제를 처방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중에 살짝 씩 나를 기대하게 하는 증상들이 있었다.


잠이 혼곤히 쏟아지는 일이 많았다. 원래 점심때 회사에서 그렇게 졸려본 일이 드문데.

유방통이 있었다.

분비물이 늘었다.

뭔가 부르르 하는 배의 경련이 있었다.

으슬으슬 추운 기운이 있었다.


이렇게 빈약했나? 뭔가 더 가능성 높아 보이는 증상들이 마구 있었던 것 같은데??!!! 집에 체온계가 없어서 체온은 지속적으로 체크해볼 수 없었다. 아…. 사람들이 증상 놀이를 왜 그렇게 하나… 상상임신이라니 말도 안 된다~ 생각했는데… 세상에… 그게 나였다.






그러던 중, 금요일에 갑자기 오후 반차를 쓰게 되었다. 급한 약속은 아니어서 오후에 퇴근하고 바로 병원으로 가봤다. 뭔가 좋은 소식을 바라고 간 것은 아니었고, 분비물과 함께 가려움까지 선사한 게 임신 증상이라기보다는 질염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치료 차 방문했다. 선생님께서도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 다음 임신 준비 전에는 이전에 결과로 나왔던 질염을 먼저 치료하자고 하셨었다.


초음파를 먼저 보면서는 선생님께서 내막 좀 보라고,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씀하셨다. (이 날 드디어 내가 누워서 초음파 받는 동안 나도 함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 초음파 중이니 긴장하고 있기도 했고, 내가 초음파 영상으로 내 내막을 봐도 뭐가 뭔지 분간할 수가 없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난포는 터졌다고 하셨다! 물혹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분비물도 다 사라졌다고 하셨다. (이게 사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인지 모르겠다. 배란이 잘 되었다는 말씀인가.) 질염 증상에 대해서는 소독과 질정만 넣어주시고, 약은 만에 하나 있을 임신 가능성에 처방해주지 않으셨다. 진료실에서는 같이 내막 사진을 보며, 내막이 상태가 좋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기존에는 너무 얇았었나 보다.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난포가 다행히 터져준 것과, 내막의 양호한 상태를 확인하니 기대감이 퐁퐁 샘솟았다. 그리고 질염 약이 처방되지 않은 것도 너무 기뻤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마치 임신 사실을 확인한 사람처럼 기뻐서, 임신하면 사야지 했던 책도 바로 구매해버렸다! 그리고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갑자기 너무 피곤해서 급하게 귀가했고, 귀가해서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아 낮잠까지도 자버렸다는 점이다. 피로하고 나른한 상태! 임신 증상 아닙니까 여러분!!






그 날부터는 더 심한 검색 생활이 시작되었다. 임신 극초기 증상, 임신 초기 증상, 임신테스트기 사용 시기 등등 어떻게든 내 상태를 임신 초기 일반적인 증상들과 엮어보려고 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려고 했다. 나와 같은 분들이 많은 것이 아주 다행이었다. 다양한 질문들과 다양한 답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사람 바이 사람이다. 뭐 하나 확신을 가지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계속 그 행위를 반복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지나친 검색과 정보 수집이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었다. 지금도 나와 동일하게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있는 여성의 임신 후기를 보고 왔는데,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경우 호르몬 투여를 통해 배란 유도를 하더라도 난포 벽이 너무 두꺼워 난자가 배출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만약 내 난자도 난포만 터졌지, 난자가 소멸된 것은 아닐까? 고사 난자라는 무서운 말도 있던데, 혹시 내 난자가 고사 난자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건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널을 뛰는 건지, 호르몬 때문에 그런 건지, 아무것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여서 혼란스럽다.



어서 빨리 확정적인 두 줄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 어젯밤부터 자꾸 가만히 있는데 소름이 돋고 으슬으슬하다. 그렇지만 열이 나고 오한이 있을 만큼은 아닌데… 임신 증상 맞는 걸까? 그냥 어제 사무실에 히터를 안 틀어놔서 감기에 걸려버린 걸까? 아무래도 가슴 통증이 사라졌는데…. 임신이 아닌 걸까??


아아 테스트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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