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돌이 Mar 30. 2021

체념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배란 후 12일째 아침 : 어젯밤에 잠들 때부터 이불 안에 있는데도 부르르 소름이 돋는 증상이 계속됐다. 소름이 계속 돋는 증상은 이틀 전부터 계속 있어왔다. 아침에 있어났을 때에는 생리통처럼 배와 허리가 묵직하게 아픈 증상이 있었다. 어제는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입맛이 없어서 점심으로 크림치즈 베이글 2/3쪽을 먹고 더 먹지 못했다. 


임신을 의심(?)하게 되면서 뭔가 몸가짐을 조심하게 되었다. 매일 달고 살던 커피는 과감히 떼 버리진 못하고 디카페인으로 대체했고, 디카페인이 없는 카페에서는 다른 음료를 마셨다. 날 것은 안 먹으려고 했고, 혹시나 해서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도 뛰지 않고 다음을 기다렸다. 콩이 착상에 좋다고 해서 가루 두유를 열심히 타 먹었고, 소고기가 좋다는데…. 임신을 하면 다시 육식을 조금이라도 해야 할까 고민도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너무 무섭게 다가오는 한 가지 생각은,
이렇게 기대했는데 임신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
어쩌긴 뭘 어쩌나 싶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도전하면 되지!!



방금 전에는 다시 한번 내 일기를 복기하다가 배에 핫팩을 올리고 잤다는 대목에서 기함했다. 배아는 열에 약하다고 했는데ㅠㅠㅠㅠ 내가 뜨거운 열로 배아를 지져버려서 자궁에 안착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는 영상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얼른 검색해보니, 배란시기는 물론 그 이후까지 배에 핫팩이나 온수 찜질을 한 사례는 많았다. 그래서 나도 희망을 갖자고 생각했다.






배란 후 13일째 아침 : 어제 아침처럼 배나 허리의 통증도 없고, 아침에 열이 나는 느낌도 없어짐. 으슬으슬한 것만 남아있는데 이게 참 진짜 그냥 추워하는 건지……뭔지 모르겠다. 가슴통증도 다 없어졌다. 


참 요상한 일이다. 몸이 가뿐하고 컨디션이 좋아진 게 오히려 불안하다. 왜 증상들이 다 사라졌을까. 임신이 아닌 걸까? 임신 초기 무증상으로 또 검색을 시작해버렸고, 초기에는 별 다른 증상을 못 느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또 안심하게 되었다. 내일모레 아침에 테스트해보기 전 까지는 계속 이렇게 끊임없이 기대하고 의심하고 실망하는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  






배란 후 14일째 아침 : 계획보다 하루 일찍 얼리 테스트기를 사용해봤다. 단호박 한 줄!


많이 실망했다. 아직 자고 있는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 품에 안겨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다시 해보면 된다고 위로해주는 남편의 말이, 나를 감싸 안아주는 두 팔이 너무 든든하고 고마웠다.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경미한 증상들(실제 있었는지도 이제는 의심이 된다.) 가지고 혼자서 김칫국을 사발도 아니고 냄비째로 마셨던 것 같다. 


더 힘든 것은 아직도 포기를 못하는 내 마음이다. 혹시 내가 테스트기가 희미하게 반응하기도 전에 버려버린 것은 아닐까? 완전 희미한 줄을 내가 못 본 것은 아닐까? 아직 계속 으슬으슬 추운데 착상이 늦게 된 거 아닐까? 생리 예정일 이후에 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또 검색 창을 두드리는 내 모습! 나 자신이 너무 멍청해 보이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도 생리 시작할 때까지는 기다려보자.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예정일대로 생리를 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또 생리를 유도하고 이후 단계를 진행해야 하는 걸까. 또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다니 막막한 마음이 든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한다는데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다. 


아… 갑자기 오른쪽 배와 허리는 왜 아파오는 걸까……






아무래도 어제 테스트기를 너무 빨리 버려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분 정도 기다린 후에 결과를 봐야 하는데 테스트기가 반응도 하기 전에 실망하고 버려버린 것은 아닐까? 새벽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선잠에 들었을 때, 꿈에서도 계속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왔다. 이런 기대를 못 버리는 내가 바보 같다가도 한 번만 더 해보자며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설명서를 정독하고 3분 후까지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희미~~ 한 줄조차 나타나지 않는 명확한 한 줄이었다! 

아 이제 인정이다!


오전까지 우울에 빠져 있다가 기운 차리고 토요일을 즐겁게 지냈다. 오후 즈음에 화장실에 가보니 선홍색 분비물이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생리를 시작하려나 보다…. 정말 잠깐은 호옥시 뒤늦게 착상혈???? 이런 기대도 했지만 이미 ㅋㅋㅋㅋ테스트 두 번이 너무나 확실해서 마음을 접었다.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찾아온 생리가 반가웠다. 내 몸의 흐름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임신이 안되었는데도 생리가 꾸물꾸물 늦어지면 어쩌지, 하루하루가 아쉬운데… 이런 걱정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월요일에 병원에 가서 다시 배란 유도하는 과정부터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서 기뻤다. 


하루하루 마음이 널뛰는 게 정말 힘든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또 달력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일정으로 진행될지 혼자 생각해보고, 이번에는 난포를 터뜨리는 주사를 맞게 될 것 같은데 어떤 주사인지 후기도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삼매경에 빠져서 이런 글 저런 글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갑자기 부아가 확 치밀었다. 새롭고 정확한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고,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반응이나 경험담을 계속 보고 있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다. 이런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왜 자꾸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이 한심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이런 걸 경계하라는 말 인가보다. 하루 종일 똑같은 주제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기대했다가 걱정했다가 실망하고 절망하는 이런 마음을 경계하라는 뜻 같다. 월요일부터는 나도 다시 산뜻하게 일상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심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