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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Sep 22. 2023

매미들  이재무 詩

9월의 매미  /  공원에서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이상한 날이라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어도 매미 소리가 줄기차게 들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나무들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시간에 쫓긴 듯 짝을 찾는 매미소리들이 가열찼습니다.


걷던 길 위에서 매미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몸이 뒤집혀 아직은 뜨거운 돌바닥에서 바둥대는 모습을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곤충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손대기가 겁이 나 가지고 있던 종이로 살짝 다시 뒤집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엉금엉금 힘들게 기더니 얼마 못 가서 금세 다시 몸이 뒤집혔습니다. 길은 자갈을 박은 돌길. 높낮이가 편편하지 않아서였을까요. 안타까워 다시 뒤집어 주며 나도 모르게 제대로 잘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버려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9월이라고 해도 아직은, 한낮의 해는 힘이 세서 볕의 뜨거움을 온몸에 담은 돌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공원이라 주변에 온통 나무들이었습니다만, 내가 앉은 벤치에서는 약 2,3미터, 매미가 바라보는 곳에서의 거리는 약 1미터 정도의 앞에 나무가 있었습니다. 내게는 가깝지만 매미의 눈에는 한없이 먼 거리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였습니다. 게다가, 날 수 있는 매미가 날지 못하고 기는 모습이 가슴속에 감정을 몰고 왔습니다. 안타까워 가지고 있던 종이로 나무까지 데려가 밑동에다 살포시 매미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매미는 나무 위를 오르려고 한 발 한 발 내디뎠습니다. 손에, 땀이 찼습니다. 마음에도 땀이 흘렀습니다. 영차영차... 엉덩이를 밀어주고 싶은 간절한 심정.

하지만, 오르지는 못하고 퉁퉁한 나무줄기 주변으로 옮겨가기만 합니다. 나무 위까지 옮겨줄까 싶다가도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오래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다른 나무 어딘가에 친구가 있을 텐데 아쉽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발견했다면 그곳으로 매미를 옮겨주었을 겁니다. 혼자는 너무 외롭고 쓸쓸하니까요.

결국 응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만 계속 마음이 쓰여 그냥 공원을 나왔습니다. 매미의 안녕을 기원하면서요. 하지만 내내 마음은 스산하고 슬펐습니다. 조만간 여름은 작별을 고하고 가을이 당도하면 매미도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고 나무가 있는, 매미가 살았던 곳곳마다 매미의 주검들이 먼지처럼 돌아다닐 거란 걸 짐작했기 때문일까요.


지금 그 매미는 어떻게 되었을까. 며칠이 지났지만 밤을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저는 그날의 매미를 떠올립니다. 모든 것이 시들어 갈 시기. 죽음이 멀지 않은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던 그 모습이 잊히질 않습니다. 아마도 오래, 그 매미의 절정의 인생이 서서히 저물어 가는 9월이 올 때마다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밀려들던 감정들도 함께요.







매미들


매미들은 나무들의 무보수 곡비들이 아닐까?

여름 한철 나무들은 매미들을 시켜

일 년 치 울음을 몰아서 우는 것은 아닐까?

거처를 내주고 짝짓게 하고

자신들의 매캐한 설움을 실컷 토해 내게 하는 것은 아닐까?

매미들은 월세를 울음으로 치러 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윈윈하는 것은 아닐까?

나무들이 운다 종일토록 운다

이 나무가 우니 저 나무가 운다

울면서 나무들이 자란다 창창울울 자란다

                                           - 이재무 -



 



 

 며칠 전, 아직은 설익은 가을임에도 아는 맛이 그리워 떫은맛이라도 느끼고 싶어 공원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산뜻한 바람이 가을 냄새를 무진장 실어 날라 자주 그 냄새에 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도시락까지 사들고 언니와 함께 호기롭게 길을 나섰더랬습니다. 초록이 무성한 가운데 드문드문 마른 나뭇잎들이 공원 위를 서성대고 있었습니다.

유독 여름이 긴 것 같은 올해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추석을 목전에 두었는데 세상은 아직도 여름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이른 가을이 달고 오는 향긋한 냄새나 풍경은 조금씩 가을이 발을 디밀고 있지만 말입니다.


매미들은 나무를 세내어 살면서 나무들의 눈물을 실컷 대신 울어주고 셈을 치렀을까요. 이제,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매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여름이면 귀청이 울리도록 짝을 찾던 그네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들만 적막을 채우곤 합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돌아간 것과 돌아오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닐지라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매미들 

#이재무 詩

#9월의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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