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Jul 01. 2021

술보다 독한 눈물  박인환 시

그리운 그곳 여수1



술 보다 독한 눈물

눈물처럼 뚝뚝 낙엽 지는 밤이면
당신의 그림자를 밟고 넘어진
외로운 내 마음을 잡아 보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렇게 이별을 견뎠습니다

맺지 못할 이 이별 또한 운명이라며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했지만
맨 정신으론 잊지 못해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버린 당신이 뭘 알아
밤마다 내가 마시는 건 술이 아니라
술보다 더 독한 눈물이었다는 것과
결국 내가 취해 쓰러진 건
죽음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박인환



출처 Pixabay




며칠 전 우연히 모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 프로그램에는 '여수'라는 지역이 방송을 탔다. 이전에도 자주 방송에 노출되었던 곳이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여수. 잠시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이었던 곳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단어와 무척이나 가까이 있던 곳. 그 방송을 보면서 다른 때와 달리 내 시선은 온통 저곳이 어디였더라. 혹여 기억 속에 웅크려 잠자고 있던, 그런 곳이 나올까 열심히 화면을 따라 눈과 기억을 더듬었다.


뭉클함이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오롯이 젖어들어 내내 쓸쓸함이 나를 덮쳤던 하루였다. 영상과 그날의 축 늘어지던 기분이 시너지가 되었을까. 

낯섦과 익숙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 내게는 그곳이 여수다.


호수 바닥에 깔린 흙처럼 고요하게 겹겹이 쌓아놓았던, 흔들지 않도록 몹시도 애처롭게 담아두었던 아픈 기억의 상념들이 손 한번 톡 댔을 뿐인데 휘몰이로 흙탕물이 되어 치고 올라왔다. 

호수 바닥에 함께 묻어두었던 시린 눈물도 치고 올라왔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꽁꽁 가두고 매어 놓았던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고삐였던 그것.


움.





여수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나조차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르기만 해도 아련했고 사랑과 이별이 1+1처럼 같이 딸려오던 그 단어가 주는 매력이 있었다. 흐릿한 별을 보는 듯한 아슴함. 그런 그 느낌이 좋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이 지금 내가 여수를 떠올릴 때의 느낌이 되어버렸다. 딱히 단어를 골라내지 못했던 그것은 -지금의 내게는- 그리움이란 녀석이었다. 


비릿한 항구 냄새와 겨울날 언 땅 위 모닥불 앞에서 추위를 녹여내던 이들을 기억한다. 추적추적 언제나 검은 물들이 발밑에서 간지럽게 쳐내지던 그날들을 기억한다. 끝도 없던 바다. 눈만 돌려도 보였던 바다. 질리지도 않고 실컷 볼 수 있었던 바다. 항구. 배. 선착장. 어시장. 그 모든 것들은 그리운 이와 함께 가슴속 깊디깊은 곳에 자물쇠로 잠긴 방에 깡그리 모여있다. 그러다 어쩌다 저 날 같은 날이 부닥치면 무방비로 풀리고 열려서 휘모리장단이 되어 몰아치고 만다.


tv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온종일 슬픔과 외로움과 보고 싶음이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나를 건드린 하루였다. 


그렇게 죽음보다 더 깊은 그리움을 맛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G를 그리워 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