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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Jul 20. 2021

포장마차

이재무의 시 & 추억 한 잔

 


포장마차


포장마차는 술 취한 승객들을 싣고 달린다

마부는 말 부리는 틈틈이 술병을 따고

꼬망어를 굽고 국수를 말아

승객들의 허기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다


술 취한 승객들은 마차의 속도를 모른다

하지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포장마차는

시간의 도로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수시로 포장을 열고 닫으며 승차와

하차하는 사람들 후끈 달아오른 실내에서

계통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

바깥은 찬바람이 불고

빈 술병은 한구석에 쌓여 작은 산을 이룬다


이윽고 종착역인 새벽에 도착한 마차가

마지막 승객을 토해놓고

마부는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려 기지개를 켠다

어디 먼 데서 기적 같은 말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재무 시






출처 네이버 이미지



왜 갑자기 포장마차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TV를 보다가 였는지 너튜브를 보다가 였는지 것도 아니면 책을 읽다가 였는지. 요즘은 예전 같지 않게 포장마차를 아무 데서나 보기가 쉽지 않다. 술을 파는 포장마차 말이다. 나는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르고 지금 살고 있는 곳도 다르다. 돌아보니 제법 여러 도시에서 살아본 것 같다. 지금은 익숙함이 좋을 나이지만, 어렸을 때나 청년이었을 때나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사회생활을 했다. 참 안 좋은 성격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은 것이,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직장 생활 또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깨달은 것이 꾸준함이란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지 였다. 언제나처럼 그런 깨달음도 내게는 늦게 왔다. 그렇다 보니 가장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한 우물을 깊이깊이 파는 사람들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뭘 해도 하나만 꾸준히 하면 뭐가 돼도 된다는 말. 아프게도 그 말의 진의를 너무 늦게 알았다.


젊은 날들을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니 지금은 제대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을 종종 느낀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산 세월들이 길다. 물론 지금도 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거창한 이야긴지는 몰라도 삶이란 것이 죽음에 닿을 때까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옆길로 샜을까.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니 양해 바란다.

내가 자란 곳. 젊은 날의 치기와 절망과 희망과 붙일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되는 그 시절을 나는 부산에서 보냈다. 그렇다 보니 포장마차를 가장 많이 타 본 곳도 부산이다. 명색이 마차이니 나는 승객이다.

서면, 자갈치, 광안리, 해운대, 덕천동, 그 외에도 정확한 동네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곳들, 다른 지역 등 친구들과 혹은 애인과, 혹은 친한 지인들과 술잔에 마음을 담아 즐거움을 취하도록 마셔댔던 곳 포장마차.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혼자서 포장마차에 갔던 일이다. 당시 살던 동네와 머지않은 곳이었는데 주인도 손님도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었다. 그냥 그날은 마음이 너무 힘들어 무작정 걷다가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 곳이었다. 주량이라 해봤자 소주 반병이 다인 난데 혼자 마시니 더 빨리 취기가 올랐던 기억이 난다. 이날 전후로는 혼자 가본 일이 없다.


포장마차에 대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여수에 살 때였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가까워 항상 걸어서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곳이 위의 사진처럼 쭉 포장마차가 액자처럼 즐비했던 골목이었는데 항상 갔던 곳만 갔었다. 그곳의 포장마차들은 항상 싱싱한 해산물들이 넘쳐났다. 부산과는 메뉴가 다름에 좀 놀랐더랬다. 밤이 익어갈 즈음 잠이 오지 않으면 계절 불문 그곳을 찾았었다.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의 쨍 소리와 오래도록 나누던 대화 내용은 잊혔다 해도,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만은 선명히 떠오른다. 그 시간들을 박제해서 항상 곁에 두고 싶을 만큼 행복했던 그날의 냄새, 공기, 느낌, 그리고 사람들.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누구와 함께였는지가 소중할 뿐.




지금 이 도시의 포장마차는 어디에 찡박혀 있을까. 아쉽게도 아직 가 본 적이 없다. 당장이라도

 "이모 여기 고갈비(고등어구이) 하나에 소주 일병!"

을 외치며 정을 부어 건배를 나누고 싶은 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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