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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Aug 30. 2021

그래서 김소연 詩

詩와.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나의 근처 어디쯤에서 배경처럼 잠을 청하고 있는 우리 집 냥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종일 집안 곳곳을 제 집처럼 누비고 다니지만, 내가 있으면 언제나 내가 보이는 어디쯤에서 잠을 자던지 그루밍을 하던지 하늘멍을 때리던지하는 아이. 아주 가끔은 베란다에 앉아 노곤하게 햇볕을 맞으며 무한정 창 너머 보이는 숲과 하늘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 뒤태를 나 또한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노랗고 하얀 털 뭉치 속에 외로움을 꿍쳐놓은듯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다가가서 외로움을 떨어내듯 보드라운 손길로 털들을 쓸어줍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던 지나간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시끄러운 건 싫지만, 적막도 싫어 종일 TV를 켜놓기도 했습니다. 혹여 전화라도 올라치면 목소리는 쩍쩍 갈라지곤 했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던 날들이 많았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때는 인지조차 못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지독히도 혼자였구나 싶은 것이 갑자기 공간이 커지고 스스로는 더 작아지는 기적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 느낌이 즐거울 리 없잖아요.

 


그래서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다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 라고 내가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 김소연


 

시체처럼 바닥에 몸을 대고 시간을 죽입니다. 머릿속을 헤집는 모든 생각들을 '생각 안 하기'로 정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잡니다. 온통 시꺼먼 고요와 하나가 됩니다. 

한낮의 볕은 허락도 없이 창을 들이칩니다.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여전히 시간을 죽입니다. 

이윽고 사위가 어두워지면 그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몸을 숨깁니다. 

여명은 기어코 어둠을 몰아내고 창을 사정없이 통과해 비릿한 아침 냄새를 방안에 쏟아냅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오고야 만 아침. 살았는지와 죽었는지의 중간 어디쯤. 몽롱한 정신과 몸뚱이로 아 내일이 오늘이 되었구나 나직이 뱉는 소리가 되지 못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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