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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Feb 09. 2022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
<키친 / 만월(키친2)>

책이 있는 공간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생각이 나서 빌려온 책이 '키친'이다. 키친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1988년 데뷔작이면서 세계적으로 작가의 이름을 알린 책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책은 명성만큼이나 사람들의 손때들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여기저기 파손의 흔적들도 세월과 함께 쌓여 책안에 고여있었다.






'키친'과 '만월'은 상실의 아픔을 가진 남녀가 그 상실을 매개로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다독이면서 점점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소설이다. 상실의 상처 깁기다.

부엌과 음식과 달이 있다.


소설은 '미카게'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미카게는 부엌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키친은 미카게의 상실에 관한 내용이다.

차례로 부모,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고아가 되는 미카게가 할머니를 매개로 알게 된 '유이치'와 '에리코(유이치의 엄마 혹은 아버지)'의 집에 머물면서 차츰 상실의 아픔을 덜어가는 이야기다.

에리코는 유이치의 엄마가 죽은 후 여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유이치의 엄마가 되었고 게이바를 운영한다.

 


나와 부엌이 남는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그나마 나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진맥진 지쳤을 때,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 죽을 때가 오면, 부엌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홀로 있어 추운 곳이든, 누군가 있어 따스한 곳이든, 나는 떨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 부엌이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밤의 부엌에서 끔찍한 소리를 내며 만들어지는 두 사람분의 주스 소리를 들으며 라면을 끓였다.
굉장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별일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기적 같기도 하고,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였다.
아무튼 나는 말로 표현하자면 사라져버리는 담담한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다. 시간은 많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밤과 아침,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때가 꿈이 될지도 모르니까.        

  
꿈의 키친.
나는 몇 군데나 그것을 지니리라. 마음속으로, 혹은 실제로. 혹은 여행지에서. 혼자서, 여럿이서, 단둘이서, 내가 사는 장소에서, 분명 여러 군데 지니리라.    
                                                  
                                                       - 키친 중에서

 



만월은 유이치의 상실에서 시작된다. 에리코의 죽음.

유이치의 집을 나와 홀로 살면서 요리 선생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미카게는, 에리코의 부고 소식과 함께 오랜만에 유이치와 다시 만난다. 에리코는 미카게와 유이치 둘 모두에게 그리운 사람이다.




「어째 우리 주변은 죽음으로 가득하네.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 유이치를 낳은 어머니, 그런 데다 에리코 씨까지, 정말 굉장하군. 우주가 넓다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거, 우연치고는 굉장한 우연이지.  ······ 참 잘도 죽는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이나 부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혼의 기억에 각인된 먼 옛날의 동경처럼 사랑스럽다. 여기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알았다. 말로서 분명하게 알았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결코 운명론적인 의미는 아니다. 나날의 호흡이, 눈길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자연히 정하는 것이다.        


정말 좋은 추억은 언제든 살아 빛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처롭게 숨 쉰다.
수많은 낮과 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였다.
언젠가 유이치가 말했다.
「왜 너랑 밥을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 거지」

                                                    - 만월 중에서


 






소설은 이따금 나를 한 문장 앞에서 오래 서성이게 했고 여러 번 읽게 했다.

미카게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을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 '그 모든 것. 이제 거기에 있을 수 없어진 모든 것.' 이란 문장은, 이미 지난 나의 그날들로 갑자기 나를 데려가는 느낌이었다. 문장 주변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낱장의 기억들이 떨어지는 잎들처럼 부유했다. 가라앉아있던 묵직한 것이 순식간에 쓴 물처럼 치고 올라왔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누군가 옆에 없더라도 실컷 울 공간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때가 있다. 상처는 가두는 것보다 토해내야 한다.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상처의 뭉텅이들은 눈물이 된다. 흘리고 흘려보내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울 수 있다면 그걸로도 더디고 서툴러도 상처는 기워질 수 있다.


상실의 상처는 흉터로 남아서 성형을 해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기진맥진할 때까지 짓무를 때까지 뱉어내고 시간을 쌓고 나면 흉터쯤이야 내 몸 어딘가에 각인되어도 조금은 덤덤하게 그 흉터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미카게가 가장 좋아하는 부엌.

부엌이란 어떤 공간인가를 생각해 본다. 부엌은 육감이 함께하는 곳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가 있고 그리고 느낌이 있는 곳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하나를 만든다. 만들어진 그것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 하나하나는 추억이 된다. 불을 켜고 물이 끓고 야채를 다듬고 고기를 썰고 보글보글 향이 나는 음식이 완성된다. 밥솥에서는 밥 냄새가 하얀 연기가 되어 폴폴 날리고.

가족이든 친구든 타인이든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음식을 먹는다. 누구든 식구(食口)가 된다.


미카게가 부엌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설령 혼자라 해도 외롭지 않은 공간. 미카게와 유이치의 상실의 상처는 함께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고 서로를 걱정하면서 서서히 기워져간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희망을 바랄 수 있는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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