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는 켜져 있지만 냉기는 코끝에 매달려있습니다. 방 창문을 지나 베란다 창문까지 덜컹대며 윙윙 울어대는 것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춥다고 창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바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문을 열수는 없었습니다.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이라는 오렌지색 글귀가 눈에 박히는 책이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속절없이 슬픔을 몰고 옵니다. 작고 슬픈 것은 아름다움과 통하는 모양입니다.
책 표지 그림을 한참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연신 고개를 갸웃대며 뭔지를 가늠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무엇일까요. '무엇'이라는 단어가 맞을까요.
찾아보니 '파울 클레'의 그림이었습니다. 작가 소개란 맨 밑에 화가와 제목이 적혀있었습니다. 파울 클레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사망한 스위스 출신의 독일 화가였습니다. 나치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작품을 몰수당했던 화가.
저자 '고향갑'의 이력을 보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이해가 되어버렸습니다. 고향갑은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작가였습니다. 지금은 경기신문에 칼럼 <고향갑의 난독 일기>를 연재하면서 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문학은 문학일 뿐입니다. 그늘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거나, 자신 안의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구체적 행위일 따름입니다. 문학은 손으로 써내는 가슴속 언어입니다. 어깨나 이마에 붙이기 위한 계급장이 아닙니다. 문학文學을 자꾸 크고 거창한 학문學文으로 격상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으로 격상시키는 순간, 문학은 '항문'이 되고 '똥'이 됩니다. - p 35 똥 중에서
지난 것은, 지난 것이라 아름답다. 사진에 박힌 순간의 기록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지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던 그렇지 않던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평하고 한편으로 다행이다. 아침은 밤이 지나야 온다. 지남을 서러워하지 말자. 설움은 지남에 있지 않고, 지나지 않으려 붙듦에 있으니까. - p 113 멸滅 중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어두운 골목길에 한 번쯤 주저앉을 때가 있다. 일부러 드러낼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써 감춰야 할 무엇도 아니다. 주저앉는 순간이 있어야 털고 일어날 순간도 생긴다. 주저앉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골목이든, 놀이터 미끄럼틀이든, 화장실 바닥이든, 그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들키지 않으려 애썼을 뿐, 나는 수도 없이 주저앉았다가 다시 털고 일어났다. 그 또한, 겨울을 털고 일어나 봄을 향해 나아갔을 것이 - p 129 그 중에서
언제부터였을까. 소를 닮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터에서 쫓겨나는 건 소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소와 사람을 밀어내고 일을 하는 건 기계와 인공지능이다. 기계와 인공지능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다. 스물네 시간 일을 시켜도 문제없고, 고장이 나도 내다 버리면 그뿐이다. 사람이 만든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정작 사람이 일로부터 소외되는 세상이다. 일이 곧 밥이고 생명인 세상에서, 일터에서 쫓겨난 일꾼들의 눈은 슬프다. 소를 닮은 눈은 슬프다. 소를 닮은 사람들은, 모가지와 상관없이 서글픈 짐승이다.
- p 141 소 중에서
꽃
취한 밤이면 아비는 어미를 팬다.
참아도 패고 대들어도 팬다.
어미 몸뚱이에 꽃이 핀다.
아이가 운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부가 떨어진다.
추락하는 아비에겐 날개가 없다.
공사장 바닥에 꽃이 핀다.
어미가 운다.
영정 사진이 화장터로 들어선다.
배고픈 아이는 매점 앞을 서성인다.
관을 삼키는 소각로에 꽃이 핀다.
아비가 운다.
우는 것들 속에서
꽃은 핀다.
- p 173 ~ 174 꽃 중에서
인간이 만든 옷 가운데 가장 고결한 것은 땀 흘려 일하는 일꾼들의 옷이라 믿는다. 지금처럼 그 옷에 깃든 땀과 헌신의 가치가 소중할 때가 또 있을까. 생활고에 지친 일꾼이 수의囚衣를 택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세상살이에 지친 일꾼이 수의壽衣를 입지 않도록 함께 나누고 보살펴야 한다. 지금은 하늘에 대고 하는 기도보다 그늘진 구석을 향한 관심과 나눔이 절실하다. - p 227 옷 중에서
이 책은 한 글자가 주는 힘들이 담겨있는 에세이입니다. 총 4장으로 나누어져 글들이 실려있습니다.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현 세태를 보는 냉철한 시선들이 한 글자 안에서 한 글자보다 더 크고 넓게 퍼져있습니다. 제목처럼, 공기를 가르고 넘겨지는 책의 장마다 울컥 울컥 슬픔들이 물로 차올라 눈앞을 흐리게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활자 속에서 선명해집니다. 부끄러움도 선명해집니다. 저자의 세상을 향한 눈빛에는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빛을 내리고 있습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위한 글들입니다. 그냥 그저 흘리지 말라고, 다시 한번 기억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특히나 4장이 그랬습니다.
알지 못했던,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지나온 검은 시대를, 검은 시대의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과거의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을 되새김질하게 합니다. 반추의 시간.
또한 이 책은 현재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버려지는 반려 동물, 고독사가 아닌 고립사, 노인과 아동 학대, 청소, 택배, 경비 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현 정치가들에게 날리는 일침들이 그렇습니다.
어렵지 않은 문장과 글들이지만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공감도 비애도 아픔도 같이 읽어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문장들이 꿈속에서 리듬을 타고 제멋대로 둥실둥실 흘러갔습니다. 구절 구절들이 구구절절이 명치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돌아봐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만으로 만들어진 생물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과거의 지금과 현재의 지금, 오지 않은 미래의 지금도 서로 어우러져야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도 잊지 못할 '첫'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