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기형도 詩
시가 있는 공간 / 그리운 사람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그때
앉은뱅이 재봉틀을
열심히 돌리시던 당신
그 옆에서 무릎베개를 하고
까무룩
잠들었던 어린 날의 나.
깨어보니,
나는
캄캄하고 네모난 방안에
홀로 동그마니
몸을 둥글린 채 누워있었습니다.
따스했던 당신 무릎의 온기는
어느새 식어버린 보리밥과
식어버린 된장찌개처럼
차게 식어서
한기가 데려가버렸었지요.
어둠은 속절없이 왔고
나도 어둠 한 움큼이 되어있었습니다.
어둑시니가 쫓아오는 것처럼
헐레벌떡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지만
별들만 무성한 새까만 하늘.
당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세상천지에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세상이었던 그때.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나의 소리 없는 소리들이
별들에게,
어둠에게 닿았을까요.
바람 냄새 치마폭에 달고
하얀 입김 길게 안개로 달고
그렇게 온 당신.
나를 안고
괜찮다 괜찮다 한없이 쓰다듬던 당신.
그날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명합니다.
당신의 고단한 하루를
철 몰랐던 어린 딸은
웅얼웅얼 칭얼대기만 했었지요.
지금
당신의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나는 살고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들을
나도 살고 있습니다.
늘 마음만 달려가고
몸은 달려가지 못했던
당신에 대한
어른이 된 후의
나의 미안함은
친절한 후회로 남았습니다.
갈수록 잘못은 많아지고
갈수록 그리움도 많아지고
갈수록 보고픔도 많아집니다.
그것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들입니다.
3월에도 고드름이 송송 달리는
당신이 있는 그곳.
몇 년째 가야지 가야지 하는
속말만 쌓이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리운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