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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Feb 24. 2022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詩

시가 있는 공간  / 반려냥 꿍이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내 옷위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꿍이



오늘은 함께 숙식 중인 우리 집 냥이 안부를 적어볼까 합니다. 

묘생 4년 6개월 차, 인간 나이로 약 34세의 씩씩한 청년입니다. 함께한 시간은 4년 5개월 정도 되겠네요. 자신이 주인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녀석입니다. 겨우내 창으로 드는 볕을 쬐는 것이 일상인 나와 꿍이. 방금 전까지도 내 옷(무릎) 위에 앉아 같이 따사로움을 만끽하던 녀석입니다.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생각들이 이따금씩 밀려옵니다. 나와 다른 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이 먹먹할 때도 있습니다. 나의 24시간과 녀석의 24시간은 다르게 흐르니까요. 그런 생각이 성큼성큼 들 때마다 왠지 마음이 쿵쾅쿵쾅 거리곤 합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할 것 같고, 더 촘촘히 시간들을 채워야 할 것만 같거든요. 실상은 마음만 달릴 뿐인 게으름쟁이지만요. 





매일이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입은 옷을 펴 만든 자리 위에 올라오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쫓아다니다가도 철퍼덕 눕기도 하고, 팡팡이, 식빵 굽기, 골골 송, 쭙쭙 송, 하품, 우다닥, 그루밍까지 늘 하는 녀석의 일과들을 변함없이 하는 중입니다.

가끔은 자다가 잠꼬대도 하고, 재채기도 하고, 방문자가 있으면 하악질도 합니다. 소소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지요. 



목하 열독중인 꿍이



누워서 책이라도 볼라치면, 어김없이 모른 척 궁둥이 내밀면서 책위에 턱 하니 앉고는 합니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자기랑 놀아달라는 거겠지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어나면, 나에게 와서 궁둥이를 들이밀면서 토닥토닥을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러면 나는 열심히 토닥여 줍니다.

손톱이라도 깎일 때는 아주 가관도 아닙니다. 까칠한 녀석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요. 손톱을 깎이고 있는 내 얼굴을 노려보면서 열심히 말을 합니다. 아니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남은 다른 손으로는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합니다. 겨우 다 깎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뜹니다. 참 영악한 녀석입니다.





방이면 방, 거실이면 거실, 주방이면 주방까지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쫓아다닙니다. 내가 있는 곳 옆에서 항상 자던지 놀던지 방해하던지 합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문 앞에서 나를 반겨줍니다. 요즘에는 좀 심드렁해졌지만요. 나가도 돌아올 거란 걸 믿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웁니다. 밥때가 됐는데 밥이 없으면 신호를 줍니다. 누워 있으면 머리카락을 물던지 그루밍을 해주든지 하면서요. 

매일을 이렇듯 비슷하면서도 다른 하루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쁠 때나 우울할 때나, 아플 때나 한결같이 서로의 옆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흐르는 하루들이 하나가 되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곁을 나란히 하면서 걷는 시기가 오겠지요. 그때도 우리 꿍이와 나는 봄같이 나른하고 따뜻하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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