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식어버린 붕어빵을 보다.

생각을 타고 흐르다.

by 혜성

의무적인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야 할 일을 모두 마무리했는지 생각했다. 잠이 들기 전, 독서를 하기 위해 켜 둘 오렌지빛 무드등 전구와 대학원 종합시험을 위해 정리한 프린트물 인쇄까지 마쳤다. 또 뭐가 있을까 더듬다가 한순간에 추억으로 산 미니 붕어빵이 기름기가 군데군데 번진 종이봉투에 여덟 개나 남겨져 손에 들려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부부가 겨울이면 매일 같은 자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신다. 작년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차갑게 부는 바람을 피해 붕어빵이 따뜻하게 구워지고 있을 작은 아지트로 들어갔다. 작은 조각배에 방금 낚아 올린 황금빛깔의 물고기들이 쌓인 모습을 기대했건만 산티아고의 불행이라도 맞은 걸까 텅 비어있는 훈김이 올라오는 철판 위에는 텅 빈 바닥이 훤히 들어나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부부는 ‘팥’과 ‘슈크림’이라고 적힌 코팅된 메뉴판을 철판의 온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용도로 씌운 아크릴판 위에 올려놓았다. 밀가루 반죽과 기름으로 번들번들한 메뉴판을 보고 있자니 입맛이 사라졌지만, 나는 팥에 손가락을 살짝 들이밀었고, 아주머니는 기계처럼 김치통같이 보이는 상자에서 두툼한 봉지를 꺼내 나에게 줬다. 3천 원을 건넨 뒤에 밖으로 나왔다. 봉투의 묵직함은 있었으나 온기는 없었다. 엄청난 실망감을 안고 미지근한 붕어빵을 하나 집었다. 꽤 오랫동안 그곳에 담겨있었는지 중력에 눌려 꼬리가 희한하게 뒤틀려 있었고, 차갑게 식어버린 앙금은 오래돼 썩어버린 내장처럼 군데군데 뭉쳐져 있었다. 밀가루의 비릿한 맛이 올라오는 바람에 뱉을 뻔한 걸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겨우 삼켰다. 돈이 아까워서 먹어보려 했지만 두 마리 이상은 무리였다. 혹시 길거리에 쓰레기봉투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아 그대로 집까지 들고 오게 됐다.


좋은 소식이라곤 도무지 오지 않는 우편함을 습관적으로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4층 버튼을 누르고 거울을 본다. 하얀 볼때기에 주근깨가 잡초처럼 빼곡히 피어있는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바람 마스크를 벗고 얼굴 전체를 보고 싶었다. 여름엔 항상 피부를 태워 캐러멜색을 유지했지만, 겨울은 별수 없었다. 나는 내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며 사람들이 왜 나를 혼혈이느냐고 묻는지 이유가 이해가 됐다. 뚜렷한 이목구비, 상당히 높은 콧대와 사각의 콧방울, 구레나룻과 이어지는 콧수염과 턱수염은 턱밑까지 가득 채웠으며 군데군데 금발과 빨간색 털이 눈에 띄게 자라고 있었다. 대다수 한국인이 가지고 있다는 전통적인 얼굴 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인이다. 아직도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내가 혼혈이 아닐까에 대해 의심하며 부모님의 국적을 묻을 때면 상당히 난감했다. 왜냐하면, 난 내 어머니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내가 생후 100일이 되던 날, 어딘가로 도망갔다고 할머니가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뱃속에 품고 내가 태어나기 날 때까지 아빠와 친가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참 좋은 여자였다고 말해줬다(할머니가 묘사하는 ‘좋은’의 정의는 ‘잘 복종하는’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드라마 같은 출생의 비밀을 가진 것은 어린 시절 방황의 촉매제 역할을 했는데, 더욱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 정체성이었다. 나는 게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가끔은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일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대다수가 평범하다고 규정하는 틀이 나에겐 항상 숨 막히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틀에 맞춰 주조된 한낱 붕어빵과 같을 순 없을까 자연이 내린 운명을 원망하던 때가 문득 떠오르며 씁쓸한 팥 맛이 고인 침속에 섞여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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