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옛애인이 미안하다며 문자했다.

[퀴어에세이]나에게 일어난 평범한 일들.

by 혜성


‘미안해’.


전 애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2년 만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현재의 애인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어서 혼자인데도 불구하고 눈치를 봤다. 확인해 보니 3시간 전에 온 문자였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휴대전화의 알림은 항상 꺼 놓기 때문에 3시간 동안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내 문자를 기다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메시지 보낸 걸 후회하고 있을까? 그랬다면 조금 민망해하고 있겠지 하며 그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다시 문자를 확인한다. ‘미안해.’ 뭐가 미안할까…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는 걸로 봐선 이 한 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걸까? 지금 그가 있는 미국의 태양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술을 마시기 좋은 금요일이나 주말은 아닐까 계산하다 일단 답장을 보내기로 했다. ‘안녕, 잘 지냈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2년 만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인사나 안부 없이 대뜸 사과를 먼저 들이대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넨 안부인사를 보고 자신이 뭘 놓쳤는지 자책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타이핑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읽고 있던 책을 폈다.


그는 자신감과 유머가 가득한 미국인이다. 190센티미터 키에 120킬로가 넘는 골리앗 같은 체격과 대조적으로 어릴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그의 태도에 녹아 들어있었다. 그런 그의 장점이라면 자신에게 흥미로운 것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직진을 한다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는 전북 현대의 경기티켓을 구매해 맥주와 치킨을 사서 경기장에 자주 갔고, 미국인이기에 어눌한 한국어로 응원가를 부르며 한국 축구에 관심있는 무리와 자주 술을 마셨다. 또한, 산을 좋아해서 한국의 국립공원을 완주하며 지도가 그려진 스카프를 모아 자랑스럽게 벽 한 면을 전시하여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그런 그가 겁내는 것은 바로 연애였다. 그것은 축구와 다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경기는 항상 열릴 것이고, 산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곳에 있다. 하지만 연애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연인과 사실은 그 속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혼란이 깃든 타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마 이 과정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복해 버리는 순간 결혼 혹은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리라. 그의 인생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 그 과정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언젠가 이야기했다.


반으로 쪼개진 핸드폰의 강화유리에는 까만 화면만 투사하고 있었다. 알림 설정을 바꿀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그의 문자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아직 읽지 않았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래서 혹시 술을 마셨나 입꼬리를 삐쭉 올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독신으로 살 거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던 그의 다짐은 특히 알코올에 들어갈 때 취약했다. 마치 댐의 수문장을 개방한 때와 하지 않은 때처럼 그 온도 차가 컸다. 미국 남부 출신의 총을 소지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에 당당하지 못했음을 나는 이해한다. 군대에 복무하고 손자를 안겨주는 형과 자신이 너무나도 틀린 사람임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을 나는 모른다. 그런 이유로 부모님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한국에 온 것임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는 주변을 항상 의식했다. 하지만 술을 마실 때면, 머리에 감싼 관습과 사회적 편견이 덕지덕지 발라진 투구는 부식되어 사라졌다. 한번은 한 모임에서 그가 만취했을 때(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난 그를 부축해 숙소로 향했다. 그는 지하철을 타는 내내 내 손을 놓지 않았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끈덕지게 표현하려 애썼다. 그의 진심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알았다. 두 남자가 공공장소에서 입술을 마주 대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는 아줌마의 비난 섞인 눈빛 따위 알코올 안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난감했지만 그의 대범한 태도를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를 떼어놔야 했고 그는 가지 말라고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며 떠나지 않을 거라고 약속을 한 뒤에야 그는 내 어깨에서 편히 잠들었다. 그는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은 듯 무심히 내 옆을 걸었다.


처음 만난 지 한 달쯤 지났고 우리에겐 어떤 꼬리표도 붙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서로가 많은 공통점과 상호보완적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난 정리를 좋아했지만, 청소기나 걸레질을 싫어했고 그는 요리를 좋아했지만, 정리에는 젬병이었다. 우린 등산을 좋아했고 등산 전후엔 의식적으로 산채비빔밥 먹는 걸 즐겼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을 충분히 안다고 착각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서로가 진지한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혼자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어느 토요일 저녁의 일이었다. 서로에 대한 체취와 음미를 마치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 무드 등에서 빠져나온 빛의 입자들은 갈 길을 잃고 방 안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천장을 멍하기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만약 내게 강아지가 있고 아직 목줄을 채우지 않은데, 우리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누군가 발견하면 그냥 데려가지는 않을까? 나와 너가 없는 우리는 절대 우리가 아니지 않을까? 아니면 난 단지 욕심 많고 쿨하지 못한 걸까?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는 장난스럽게 내 젖꼭지를 꼬집으며 묻는다. ‘무슨 생각해?’ 나 혼자서만 진지한 걸까 란 생각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 순간 약간의 짜증을 빌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다짐했다. ‘이런 애매한 관계가 날 힘들게 해.’ 그는 여전히 장난스럽게 말했다. ‘뭐든 라벨링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야. 순간 고정돼 버리잖아.’ 그의 입에서 나온 공기는 날카롭게 내 마음을 갈가리 찢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 적중으로 기뻐서 나온 눈물인지 처절한 고통에서 나온 것인지 모를 눈물이 눈알 위를 한가득 덮고는 그 한계점을 넘어 하늘의 별똥별처럼 얼굴의 옆면을 날카롭게 스쳐 내려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드라마의 몇몇 캐릭터들은 쉽게 받아들이던데 나에겐 해결할 수 없는 수학문제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왼팔을 내 머리 밑으로 넣고 오른팔로 나는 감쌌다. 나의 눈물과 그의 가슴에 맺힌 땀이 뒤섞여 구불구불한 가슴 털 사이사이로 씻겨 내려간다. 난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괜찮다는 자기암시는 도통 먹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간임을. 정확한 선을 그어주지 않는다면 영원한 혼란속에서 길을 헤맬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난 끝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귀에 대고 휘몰아치는 모든 폭풍을 잠재울 몇 마디를 속삭였다.


1년 뒤에 그는 미국에서 정치학 석사공부를 하기로 했고, 우린 자연스럽게 장거리연애로 전환했다. 그해 겨울, 난 한 달간 그와 미국에 있었고, 그는 자기 부모님 집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우리의 스토리를 세뇌시키듯 읊었다. 우린 한국에서 만났으며, 취미가 같아서 친해지기에 큰 무리가 없었고, 크리스마스는 가족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동양의 정서 때문에 다행히 휴일을 틈타 미국을 여행할 수 있었고 모레면 워싱턴 D.C를 혼자 여행한다. 간단하면서 내가 그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 오지 않았으며 단순히 연락이 닿아 며칠 방문한 것에 그치지 않다는 의도를 나타내면서 잘 짜인 스토리라고 생각했다(난 이 스토리를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으며, 그들이 궁금했던 것은 한국에 관한 것 뿐이었다). 그의 부모님 댁에는 사촌 다섯, 형과 그의 아내와 딸이 모였다. 하나같이 비대한 그들의 몸은 나와 명확한 간극을 이뤘다. 이들은 나와 같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피부색이나 눈의 색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의 세계는 온갖 잡육을 섞어 놓은 소시지에 특권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어 놓은 듯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년 크리스마스엔 근처 호텔에 있어 달라고 얘기를 꺼냈다. 두 번 연속 가족모임에 내가 온다면 다들 눈치챌 거라며 딱 3일만 참아 달라고 부탁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먹은 버터 한 덩이를 몽땅 집어넣어 으깬 감자의 맛은 돌아가는 내내 씁쓸하게 내 입에 남아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뒤 난 그와 헤어지기로 했다.


메시지창을 열었다. 그는 15분 전에 내 문자를 읽었다. 그가 자신의 언어로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면 더 일찍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독서 등을 끄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동굴의 앞에 서서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 그 정적을 이해해보려고 시도했다. 이미 지나간 이의 후회가 내 머리카락을 허망하게 건드리고 지나갔다. 행복했던 추억으로는 누군가의 발목을 걸어 잠글 수 없음을 그는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함께했던 연인을 떠나게 했든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고,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