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단골 커피숍에서 생긴 일.

[게이에세이]내가 겪은 일들.

by 혜성

나와 애인이 자주 가는 커피숍이 있다. 그곳은 우리가 저녁을 먹고 산책을 가는 도중에 마주치는 가게다. 천오백 원에 아메리카도가 꽤 큰 사이즈로 나오기도 하고 품질도 나쁘지 않아서 좋다. 혼자서 지나가면 그냥 지나치는데, 출출할 때 냉장고 문을 괜스레 열어보듯이 애인과 함께 있으면 습관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을 다니다 보니 저녁시간에만 일하시는 사장님은 우리 얼굴과 커피 취향을 외우셨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키오스크로 주문했고, 사장님은 눈인사를 하고서 물었다.


“라테에 설탕, 뜨거운 아메리카노엔 얼음 조금 넣으시죠?”


나는 기억해준 것에 감동하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네’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절제된 최소한의 동선으로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웃음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이는 베프?” 그녀의 말은 꼬리가 잘린 뱀처럼 사납고 빠르게 나를 공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난 뭐라고 대답할까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며 그녀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녀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친근하고 싹싹한 한국 여성이다. 경험상 내 주변의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한국 여성들은 커밍아웃에 큰 반응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괜찮음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편이었다. 또, 난 50대 초반 대학교 지도교수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일대일 대면 상담을 교수님 연구실에서 진행하던 중이었고, 난 방학 동안 있을 프로젝트에 일주일간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교수님은 ‘여자 친구랑 어디를 가니?’라고 물으셨고, 난 ‘네, 애인이랑 여행을 갑니다.’했지만 교수님은 계속 ‘여자 친구’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꺼내서 사용했다. 나는 ‘남자 친구’라고 지긋이 주장했다. 교수님은 납득이 안된다며 되물었고, 나는 ‘교수님께선 여자 친구라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저는 여자 친구는 없고,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교수님의 반응은 ‘네 동기들에게 이런 건 이야기하지 마. 소문이 돌 수도 있어.’였다. 내가 참고 넘어갔어야 했나 후회했다.


“네 그냥 친구예요.” 고주파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스팀기로 우유를 데우고 있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맨날 같이 다니길래.” 컵을 비스듬히 내리고 차분히 데워진 우유를 쏟는데 집중을 하고 있는 듯 보여서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어를 못하는 애인은 무슨 대화가 오고 가는지 물었다. 우린 완성된 커피를 들고 웃으며 항상 그렇듯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와 내 머릿속에서 어떤 갈등이 일렁였는지 털어놨다.


“네가 이 근처에서 일하고, 네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해서 말 못 했어. 게이라도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몰라서 두렵기도 했고.”


그는 잘했다고 끄덕였다. 물론 우리의 존재를 부끄러워한다거나 당당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은근한 차별의 시선으로 부당한 대우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춰야 했고 그것은 옮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마음 저편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1년이 넘었고, 사장님이 우리에게 사적인 질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골손님에게 보이는 단순한 호기심일 수 도 있지만, 우리를 조금 더 알기 위해 한걸음 다가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주변과 우리를 분리해서 벽을 세우는 기분은 여전히 있다.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지 전까지 사회 속에서 만난 낯선 타인과 교제하는 것은 상대와 카드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상대가 조커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추하고 내 손에 있는 조커 패를 어떤 타이밍에 내서 게임의 판도를 바꿔야 하는지 눈치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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