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에세이] 그와 나의 이야기.
내 애인은 아일랜드인이다. 푸른 눈에 백인 중에서도 조금 더 창백한 편에 속한다. 아일랜드 날씨를 보면 정말 햇빛을 못 받고 오랫동안 자라면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구름이나 비가 자주 오는 나라이다. 그래서 야외활동보단 실내에 자주 있는 문화 탓에 차, 베이킹, 인테리어 디자인이 발전한 것 같다.
나는 사람들 모임이나 동호회에 가면 감성 소모가 심한 편이라서 주말엔 편하게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 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 집에 들여놓는 것도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고 되도록 장식물을 두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내 눈앞에 띄게 되면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와 나의 취향은 굉장히 달라서 그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느낀 놀라움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첫 번째 데이트 때 그의 집에 바로 가서 섹스를 하기엔 너무 쉬워 보지는 것 같아서 두 번째 데이트 때 가기로 하고 거절했다. 다음날 우린 점심을 먹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자그마한 원룸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신발장이 있는데, 색상이 굉장히 다양하다. 형광 노란색 신발, 스니커즈, 슬리퍼, 어그부츠, 운동화, 몇 켤레의 구두가 잘 정돈되어 있다. 나는 보통 2~3켤레를 가지고 있어서 작은 신발장이 아닌데도 꽉 차있는 데다 공간이 없어서 현관에 널브러져 있는 게 신경이 쓰이곤 했다. 이걸 언제 다 신고 다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 호랑이 호피 모양으로 널브러져 있는 러그가 있는데, 뒤에 펼쳐진 작은 방을 수호하듯이 날 노려보고 있는 듯하다. 어쩐지 그의 등을 밟고 지나가는 게 석연찮다.
방안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른쪽의 책장인데, 그의 취향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일본 포켓몬센터에서 구입한 잉어킹 풍선을 들고 있는 피카츄, 라이츄와 초밥집에서 일하고 있는 피카츄 유리잔 세트, 레고 회사에서 나온 조립된 꽃다발, 더블린 대학교 졸업기념으로 산 테디베어와 여섯 병의 조 말론 향수들이 즐비해 있다.
그리고 왼쪽엔 그의 책상이 있는데, 그 위는 언제라도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색연필과 팔레트, 붓, 물감들이 가지각색으로 정리가 안된 채 널브러져 있고 그 위의 벽면엔 동양적인 여성이 온몸의 연꽃 타투를 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비스듬한 각도로 앉아 있는 탓에 여성의 유방은 보일 듯 왼팔에 가려져 있고 고래를 숙였지만 그녀의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푸른 용이 그려진 백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고급스러운 동시에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듯했다.
작은 원룸인데 신기하게 베란다가 있었다. 1평 정도였는데, 집안에서 그렇게 많은 식물을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살고 있는 나무에 비해 좀 좁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식물들이 내 키와 비슷하게 자라고 있었고, 창 틈, 가스 파이프라인이나 철제 단상의 걸 수 있거나 놓을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쪽엔 분갈이용 흙이랑 빈 화분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몇몇 화분엔 영양보충제 뒤집혀 흙 속에 파 묻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면서 실로 엮어서 만든 행거들을 보여줬다. 기이하게 꼬인 패턴들이 DNA 사슬처럼 규칙적으로 엮여 있던 게 신비롭기까지 했다. 관엽식물들 사이에 부처의 석고 장식이 눈을 감고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내가 굉장한 식물 애호가이자 멕시멀리스트를 만났구나.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