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퀴어 문학「아름다움의 선」

영국의 동성애는 왜 억압받았는가.

by 혜성
205900767.jpg 앨런 홀링스트의 '아름다움의 선'


1980-9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앨런 홀링허스트(Alan Hollinghurst)의 2004년작 ‘아름다움의 선’에서는 에이즈(AIDS)를 다룬 소설이다. 퇴폐적인 영국 상류층들의 타락을 도심 변두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골동품 상인의 아들인 닉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닉은 스무 살이 되면서 런던의 대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 귀족 집안의 자녀인 토비의 제안으로 그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토비의 아버지 제럴드는 영국 보수주의 토리당 의원으로 집안은 온갖 사치품들을 자랑하듯 전시해 놓았다. 이때, 동성애자인 닉은 첫 남자 친구를 만난다. 이름은 레오이고 가난한 인도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하류층에 속한 인물이다. 이 둘의 관계에서 닉은 어떤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토비의 가족에게서 받은 자신의 금전적, 권력의 부족함에서 오는 박탈감으로부터의 도주이자 해방감이다. 닉은 레오의 인종적인 면에서 우월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절정의 순간을 묘사를 멈추고, 다음 챕터에서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레오의 자리를 대신 한 인물은 레바논의 벼락부자의 부모를 둔 와니이다. 그는 약혼자가 있으면서 닉과 관계를 맺고, 쓰리썸, 코카인과 포르노에 중독된 퇴폐적이면서 위선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제럴드와 그의 아내는 결혼 기념 25주년을 맞이해 거대한 파티를 여는데, 거기서 닉은 영국의 수상 마가렛 대처와 춤을 추는 영광을 갖는다. 웨이터와 와니와 쓰리썸을 즐긴다. 이때 와니는 코피를 흘리는데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기 때문에 후에 큰 폭풍으로 번지리라고 생각을 못한다.


닉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확인받는다. 절대 회피할 수 없는 그의 가난한 신분을 가리기 위해 미에 대한 허영심을 키워 여러 조각품들, 그림과 문학에 대한 지식을 익히고 뽐낸다. 시골에서 골동품이나 파는 아버지의 존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자신도 결국 다를 것이 없다는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홀링허스트의 소설은 어떤 처벌이나 도덕적 올바름에 대한 깨우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백인이지만 상류층 사이에선 타자이자 성소수자인 닉은 유색인종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결국 에이즈의 확산으로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제럴드는 닉을 집에서 쫓아낸다.


제임스는 아내 몰래 불륜을 하고, 캐서린은 섹스에 중독되어 남자 친구를 매번 갈아치우며 자살기도와 약물 중독에 빠졌으며, 토비는 코카인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다. 작가는 이런 영국의 상류층들의 민낯을 고발하고 동성애는 마치 이보다 더한 죄라도 되는 듯 불법이라고 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담담히 그려낸다.


자신들의 죄에서 벗어나고자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들에게 쉽게 돌을 던지는 꼴이 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에이즈는 유색인종이자 동성연애자에게 발병한다. 에이즈균은 단순히 병리학적 바이러스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제국주의와 가부장제 안에서 억압받은 타자들이 느끼는 소회, 불안과 상실감인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후손인 레오는 가난하며 영국 귀족들에게 환대받지 못하는 천민 취급을 받는다. 하층민이자 게이인 이들은 숨어서 사랑을 해야 하고 섹스를 해야 한다. 그것이 더러운 화장실이든 공원의 어두운 곳이던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는 이처럼 가장 더럽고 동물적인 행위로 전락하여 품위를 훼손시킨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레바논에서 태어난 와니의 아버지는 영국의 마켓 사업을 인수해 단숨에 벼락부자가 되어 영국을 찬양하게 된다. 이들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그것은 자신이 영국 귀족과 맞먹는다는 허황된 우쭐함을 뽐낸다. 이들의 이상화된 상류층의 이미지는 왜곡되어 자신을 갉아먹는 짓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상류층 문화를 추앙하고 모든 것을 카피한 와니는 결국 에이즈에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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