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책 리뷰] 추락(1)

용서란 무엇인가?

by 혜성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 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문학은 추상적인 철학자들의 이론들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의 인간 세계에 덧띄워져 어떻게 작동하는지 바라보는 한 현상을 바로는 것이다. 철학들은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생각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글 속의 이론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현실에게 어떻게 작동될지 이해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복수는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명제가 있다면 우린 쉽게 수긍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을 기반으로 한) 문학에 씌워지게 된다면 상황을 복잡해진다. 자신의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배 속의 아이까지 죽인 이들에게 복수하는 신부는 어떤가? 그녀는 정의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정의라면 그녀가 복수한 자의 가족이 그녀에게 또 복수를 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면 사법기관을 통한 공적 복수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그가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형량을 줄이고 일 년 뒤에 교도소에서 나와 다시 잘 산다면? 복수하려는 신부가 과거에 다른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살인마라면 그녀의 정의로움은 여전히 유효한가? 신부의 가족들을 몰살 살인청부업자가 사실 착한 사람이고 누군가의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면? 이렇게 개인의 과거와 성격들은 서로 인과관계로 맞물려 절대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예술작품들은 인물의 심리와 시대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명확히 선과 악의 구분을 지을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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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존 쿳시(John Maxwell Coetzee)의 소설 ‘추락(Disgrace)’은 난해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데이비드 루리(David Lurie)는 남아프리카의 한 대학에서 로맨티시즘 시를 가르치는 50대 백인의 이혼남이다. 2번의 이혼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그녀들과 섹스를 하는 도덕적으로 약간 타락한 인물이다. 그러다 서른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여학생 멜라니와 섹스를 하게 된다. 멜라니는 다음 날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고 극단 활동에 매진한다는 핑계만 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멜라니의 아버지 전화와 함께 사건은 공식화되고 대학교에선 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는 관계의 부적절성을 인정하나 상담이나 치료는 거부한다. 루리는 상담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압력이며 한 인간의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결국 그는 대학 교수직은 그만두고 농장일을 하는 레즈비언 딸 루시과 지내며, 동물보호소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흑인 강도가 침입해서 데이비드를 폭행하고, 루시를 집단 강간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루시는 이 과정에서 아이를 임신한다. 루리는 낙태를 권유하고 이사하자고 이야기하지만 이웃집에 사는 흑인 노인과 결혼하면 그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며 도망가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다. 데이비드는 멜라니의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간다. 멜라니의 아버지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데이비드는 멜라니의 집에 찾아가 그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고 루시에게 향한다.


20220309_231949.png 존 쿳시(John Maxwell Coetzee)의 사진


스토리텔링은 전체적인 맥락과 서로 다른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이 마구 뒤엉키면서 철학자들이 말하는 용서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서라는 개념이 실제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고,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를 상기시켜준다. 이 소설은 주인공 데이비드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 세상을 3인칭 시점으로 풀어놨기 때문에 피해자인 루시나 멜라니의 대사는 들을 수 있으나, 그녀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들의 도덕적 결점들은 뭔지 쉽게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가해자인 데이비드의 속마음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이것들이 독자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게 된다. 50대인 지식인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의 시점에서 바라본 흑인들은 야만적이며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으로 보지만 그의 행적들을 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게 만든다. 강간으로 인해 임신했으면서도 자신의 집과 아이를 포기하지 않다고 고집을 피우는 루시는 레즈비언이라는 성지 향성으로 그녀에게 벌어진 사건이 요모하게 포장되며,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교수와의 관계를 승낙했으나 피해자처럼 가족들에게 알리고 숨어버린 멜라니는 교수가 좋아서 섹스를 한 건지 아니면 권력적인 관계가 그녀의 결정에 관여를 했는지 묘사하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쿳시의 세계에는 완벽한 선과 악의 기준이 무의미하며, 이런 도덕과 정의의 기준이 칼로 그은 듯이 확실하지 않다는 현실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소설에서는 식민지배자인 백인 남성인 데이비드와 이외의 타자화 된 인물들(여성, 흑인, 동물)을 대립시키는 구도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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