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금요일, 멜랑꼴리하게
사랑 행위를 마친 우리는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푹신한 침대와 샤워젤 냄새로 가득 찼다. 애인의 가슴엔 닦지 않은 물방울들이 가슴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순간 궁금함에 입을 열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뜬금없이 날아온 진지한 주제에 그는 당황해하며 미소를 머금고, 생각에 잠긴다.
“미안, 구체적으로 네가 너의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날 사랑하는 것과, 너의 누나를 사랑하는 게 어떻게 달라?”
“어린이 같은 사랑이 아닐까 그건? 그리고 굉장히 입체적인 기분이 들어. 따뜻한 추억이 느껴지기도 하고, 미웠던 추억도 있었으니까. 가족들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네가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과 내게 느끼는 사랑은 그럼 과거에 대한 추억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같지 않다는 거야? 만약 기술이 발전해서 너에게 나와의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을 주입하면, 넌 너의 가족을 사랑하듯이 나를 사랑한다는 거야?”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냥 사랑이란 게 감정이잖아.”
“그렇담 단지 관계에서 섹스를 빼고, 네가 네 절친을 사랑하는 마음과 네가 날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
“흠... 글쎼, 정도가 다르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맥락이라는 거잖아?”
“응, 사랑이 뭘까라고 생각해 봤는데.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 같아.”
“마치, 부모님과 신의 사랑과 같이?”
“응”
“하지만 자식이 정말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 어릴 때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하잖아. 어쩌면 우리가 자식으로서, 연인으로써 말하는 사랑은 무조건적인 게 아니지 않을까?”
“그런가?”
“결국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잖아.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사랑을 하고, 친구들에게 연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받지 못한다면 실망이 좀 생기지 않아? 그럼 조건적인 거 아닐까?”
“난 부모님에게 사랑을 배웠어.”
갑작스럽게 변경된 주제에 나는 잠시 천장을 보며 그가 한 말을 곱씹어 보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을 열려다 그의 감긴 눈을 봤다. 방금 섹스를 마쳐서인지, 하루 동안 피곤해서인지 숨을 거칠었다. 나는 그가 자도록 내버려 두고 혼자 생각에 빠졌다.
우리 가족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보험사인 고모는 이미 4개의 보험을 그녀를 통해 가입한 내가 하나를 거절했더니 “엄마 없는 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렇게 거절할 수가 있어? 내가 너를 엄마처럼 보살펴 줬는데, 이러기야?”,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다섯 명의 자식에게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나에게 “그래서 손주 하나 내가 정성 들여서 키워놨으니까, 이제 덕 좀 봐야지 안 그래? 자식들 키워봐야 다 헛일이야. 너라도 옆에 있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않겠니?” 그들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미래를 위한 투자인 걸까?
사랑은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애착을 본능적으로 가진다. 그리고 그들의 보살핌과 관심을 요구한다. 우린 그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서 작동되는 것이지 않을까?
섹스를 멈춘 커플들이 느끼는 사랑과 절친들이 느끼는 사랑은 다른가? 20대까지만도 사랑에 죽고 못 살았던 나인데, 비가 와서인지 그것의 실체가 문득 궁금했다.
“All you need is love” 라는 가사가 한참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관심’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겐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담 사랑은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인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