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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Apr 11. 2022

62. [시]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1)

토마스 딜런의 자연.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들의 뿌리를 시들게 하는 힘이 

나의 파괴자다.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구부러진 장미에게 말할 수 없다

내 청춘도 똑같은 겨울 열병으로 굽어졌음을. 


바위틈으로 물을 몰아가는 힘이 

붉은 내 피를 몰아간다; 모여드는 강물을 마르게 하는 힘이 

내 피를 밀랍처럼 굳게 한다.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내 혈관에게 입을 뗄 수가 없다

어떻게 산 속 옹달샘을 똑같은 입이 빠는지를. 


웅덩이의 물을 휘젓는 손이 

모래수렁을 움직인다; 부는 바람을 밧줄로 묶는 손이 

내 수의(壽衣)의 돛폭을 잡아끈다.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목 매달린 자에게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내 살(肉)이 목을 매다는 자의 석회가 되는지를. 


시간의 입술이 샘물머리에 붙어 거머리처럼 빨아 댄다;

사랑은 방울져 모인다, 그러나 떨어진 피가 

그녀의 상처를 달래 주리.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기상(氣象)의 바람에게 말할 수 없다,

어떻게 시간이 별들을 돌며 똑딱똑딱 천국을 세는지를.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애인의 무덤에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내 시트에도 똑같이 구부러진 벌레가 기어가는지를.



 딜런 토마스(Dylan Thomas)는 1914년 10월 27일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지방 도시의 잘난 체하는 어둠(the smug darkness of a provincial town)”이라는 스완지(Swansea)에서 태어났다. 그는 the Swansea Grammar School에서 1931년까지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the South Wales Daily Post에서 작가의 꿈을 키우며 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작가가 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학교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않고 작가가 된) 예를 들기도 하였다(Ellmann & O’clair. 1973,p335-336).


 20세기 초, 자연과 기계의 영역이 서로 구분되면서 도시 내에서는 자연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개발되어야 한다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대두되던 시기였다. 주관적인 경험과 개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모더니즘’ 문학에선 세계대전에서 겪은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마주한 뒤로 인간 윤리의 회의감을 가져와 당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8살인 토마스는 처음으로 런던에 방문하여, 1934년 그는 초기 18개의 작품을 발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는 Auden, Spender, MacNeice, Dey Lewis 그리고 Eliot과 같은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과는 다른 극진적인 새로운 형식이었다(Simpson, 1978, p.31-32). 전쟁의 잔인성, 회의감과 같은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대중의 인기를 끌던 문학 장르와는 다르게 그는 오히려 자신의 고향인 웨일스(Wales)의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자연의 소리와 직접적인 자연과의 교감을 기존의 낡은 언어가 아닌 그의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윤석임. 2016). 자연 속의 평화로운 시골을 주제로 하는 낭만주의와도 산업사회와 전쟁의 회의감과도 다른 그만의 새로운 문학의 장르를 창조해냈다. 


  토마스의 초기 작품 18개 중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동일한 하나의 세계라고 주장하는 그의 특성이 잘 나타난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의 시는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공존하고 있으며 불확실성과 확실성의 공존, 창조와 파괴, 삶과 죽음, 상승과 하강 등의 서로 상반된 특징들이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과 자연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동양의 종교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다. 


 Derek Stanford(1964)는 “인간과 자연의 하나 됨 (the oneness of man and nature)”이라고 토마스의 시를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신비주의적인 불교의 사상으로 하나의 세상 안에 선과 악이 하나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는 첫 행에서 이 시가 담고자 하는 바를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푸른 도화선 (The green fuse)”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다른 시들을 에세이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시적인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Tindall. 1996, p.38-42). 자연물인 물(water), 개천(streams), 산(mountain), 진흙(clay), 바위(rocks), 바람(wind)은 인간의 신체 일부분인 입(mouth), 정맥(veins), 손(hand), 입술(lips), 머리(head), 피(blood)로 연상시키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몸은 해부학적으로 자연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명확한 이미지가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창작한 것이다.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들의 뿌리를 시들게 하는 힘이 

나의 파괴자다. 

하여 나는 말문이 막혀 구부러진 장미에게 말할 수 없다

내 청춘도 똑같은 겨울 열병으로 굽어졌음을. 


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

Drives my green age; that blasts the roots of trees 

Is my destroyer.

And I am dumb to tell the crooked rose

My youth is bent by the same wintry fever.     


첫 번째 스탠자에서 이 ‘도화선’의 형용사로 ‘푸른’을 사용했다. ‘푸른(green)’이라 함은 보통 ‘젊은, 생기 있는’이 자연스럽게 연상됨으로 ‘도화선(fuse)’는 녹색의 줄기를 연상키기고 '젊은'을 떠올리게 하지만 다음 행의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Drives my green age)’에선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성인으로 향해가는 소년을 떠올릴 수도 있으나 죽음을 향해가는 인간이 연상되기도 한다.  


 첫 스탠자에서는 ‘힘 (The force)’의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힘은 꽃을 피우는 창조의 힘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세 번째 행에서 이야기하듯이 ‘나의 파괴자다. (my destroyer)’처럼 파괴하기도 한다. 이 힘은 두 번째 행에서 처럼 ‘나무들의 뿌리를 시들게 하는 (blasts the roots and trees)’ 힘으로 뿌리와 나무로 향하는 에너지의 하강과 상승의 이미지를 주기도 하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하강의 이미지는 죽음, 상승의 이미지는 생명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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