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에 나타난 자연.
사과를 딴 뒤에(After Apple-Picking)
긴 사닥다리의 두 끝은 나무를 통해
하늘을 향해 아직도 뻗어 있고
그 옆에는 아직도 비어있는
통 하나가 놓여 있으며, 어느 가지에는
아직 따지 않은 사과 두세 개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만 따렵니다.
겨울잠의 향기가 밤에 퍼집니다.
사과의 냄새-나는 졸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물통에서 걷어낸 얼음으로
서리 맞은 풀의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이상스러움을
내 눈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얼음은 녹아서, 떨어졌고 깨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꽤 잠에 빠져 들어 있었습니다.
내 꿈이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될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확대된 사과들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줄기 끝과 꽃 끝,
그리고 적갈색의 빨간 사과의 모든 흠집(점)들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내 둥근 발등은 여전히 아플 뿐 아니라
사닥다리 가로장의 압력도 받고 있습니다.
나는 가지들이 휘어질 때 사다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하실 창고에서 들려오는,
쏟아지는 수많은 사과들의
구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과 따기를 너무 많이 한 때문이리라,
내 자신이 원하던
풍작에 지쳐 버린 것입니다.
수만 개의 과일을 만지고,
손에 소중히 쥐고, 따내고, 떨어뜨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땅에 떨어진 것은
흠집이 생기지 않거나 그루터기에 찔리지 않을 경우에도
무가치한 것으로
틀림없이 사과주를 만드는 사과더미로 보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나의 이 잠을 뒤흔들어 놓을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잠이 어떤 잠이건 간에, 들쥐가 가지 않고 있다면,
그 들쥐는 내가 묘사한 바
오고 있는 나의 이 잠이 자기의 긴 잠과 같으니
아니면 그저 인간의 어떤 잠일 뿐인지를 말해 줄 수 있으리라.
긴 사닥다리의 두 끝은 나무를 통해
하늘을 향해 아직도 뻗어 있고
그 옆에는 아직도 비어있는
통 하나가 놓여 있으며, 어느 가지에는
아직 따지 않은 사과 두세 개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만 따렵니다.
1-5행
화자의 상태는 사다리에 올라가 있다. 사다리와 통은 인간이 발명한 도구이고 자연에서 나오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채집하고 저장하는 데 사용된다. 또 인간의 위치는 땅이 아닌 사다리 위에 올라서 있으며 하늘에 가까이 가다가 있다. 이것은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면서 인간이 자연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닌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며 다스리거나 지배하는 위치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아직도 비어있는' 통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가득 채운 통을 보지 않고 자신이 이미 딴 사과보단 자신이 더 가질 수도 있는 물질에 더 눈이 간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만 딴다고 말한다.
겨울잠의 향기가 밤에 퍼집니다.
사과의 냄새-나는 졸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물통에서 걷어낸 얼음으로
서리 맞은 풀의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이상스러움을
내 눈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얼음은 녹아서, 떨어졌고 깨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꽤 잠에 빠져 들어 있었습니다.
6- 14행
문학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탄생을 봄이라고 한다면 겨울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삶의 시작을 아침이라고 한다면 밤은 노년이거나 마지막이겠죠. 또한 잠은 죽음 혹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이동을 이야기합니다. 6행에선 '죽음'에 관한 비유적인 표현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향기는 외부의 것이 코를 통해 인체로 들어오고 느끼고 내부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향기를 맡은 화자는 자신의 내면으로 감각을 이전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과거 아침에 얼음을 통해 바라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얼음은 차갑고 모든 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자연(외부)의 것입니다. 그곳은 바로 모든 것이 죽어있는 죽음의 세계인 것이죠.
내 꿈이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될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확대된 사과들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줄기 끝과 꽃 끝,
그리고 적갈색의 빨간 사과의 모든 흠집(점)들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15- 19행
화자는 그 꿈속에서 이상한 것은 경험하는데, '확대된 사과'는 흠집이 나 있고 그것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것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나 예를 들어서, 모든 다이아몬드는 사실 다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보석 중에서도 다이아몬드가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그것이 더 값지다고 하고, 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회사가 마케팅을 잘 한 덕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다이아몬드 중 몇 개가 흠집이 났다고 한다면 우린 그것이 유독 크게 느껴질 것이라느 겁니다. 모든 상황에서 유독 단점을 잘 발견하고 그것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굉장히 큰 것이기 때문이죠.
내 둥근 발등은 여전히 아플 뿐 아니라
사닥다리 가로장의 압력도 받고 있습니다.
나는 가지들이 휘어질 때 사다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하실 창고에서 들려오는,
쏟아지는 수많은 사과들의
구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20- 25행
화자는 사다리 위에 서있는 것에 불안과 고통을 느낍니다. 인간은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죽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그 불안의 감정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의 재산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사과 따기를 너무 많이 한 때문이리라,
내 자신이 원하던
풍작에 지쳐 버린 것입니다.
수만 개의 과일을 만지고,
손에 소중히 쥐고, 따내고, 떨어뜨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땅에 떨어진 것은
흠집이 생기지 않거나 그루터기에 찔리지 않을 경우에도
무가치한 것으로
틀림없이 사과주를 만드는 사과더미로 보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6- 34행
화자는 자신이 끊임없이 한 노동에 대한 지겨움을 호소합니다. 지치고 힘들어서 죽음에 이를 지경에 서있어도 상처받은 사과는 가치가 온전한 사과보다 적기에 물질을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인간보다 더욱 귀중한 대접을 받고 있는 사과를 이야기하지만 땅에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무가치한 사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자신의 서열이 내려가면 무가치해질 것이라는 인간 계급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이 나의 이 잠을 뒤흔들어 놓을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잠이 어떤 잠이건 간에, 들쥐가 가지 않고 있다면,
그 들쥐는 내가 묘사한 바
오고 있는 나의 이 잠이 자기의 긴 잠과 같으니
아니면 그저 인간의 어떤 잠일 뿐인지를 말해 줄 수 있으리라.
35- 40행
화자는 들쥐가 만약 이것을 본다면 인간의 잠이 자신의 잠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하나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입니다. 들쥐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하찮고 불필요한 포유류일 것입니다. 병균을 옮기고 인간이 저장해 놓은 곡식에 해를 가하니까요. 사과는 결국 자연이 모든 동물에게 준 음식일 텐데 자기들 마음대로 땅을 사서 그 안에서 자라는 사과는 자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과가 잘 자라려면 수분을 해주는 벌레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하고 태양도 필요합니다. 들쥐는 자연을 상징하지만 인간에게 이득을 주지 않는 자연입니다. 그리고 그의 잠과 인간의 잠을 분리하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으로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제공하는 신적인 존재이면서 하나로 결합될 수 없는 분리된 존재이기도 하다. 자연의 작동은 인간에게만 치우칠 수 없고 모든 생명에게 동등하게 이뤄진다. 뉴욕 주립대의 영문학 교수 거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확실히 자연은 자비로운 신으로 숭배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자연은 험악한 표정을 가진 적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인간을 말살하기 위하여 내려치는 천둥번개를 가진 존재로 무섭게 묘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 요소들이 공존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친구이기도 하고 또한 적대자이기도 하다.
거버의 말처럼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으로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제공하는 신적인 존재이면서 근복적으로 하나로 결합될 수 없는 분리된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자연의 작동은 인간에게만 치우칠 수 없고 모든 생명에게 동등하게 이뤄진다. 프로스트는 인간이 자연에서 느끼는 괴리감, 공포감을 보여주며 동물과 자연에서 분리되고 고립된 존재로 그려 소외와 상실감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프로스트는 천국을 향한 사다리에 올라선 화자처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의지를 가지고 계속 삶은 사는 것이 인간의 삶임을 이야기한다.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분리되고 고립된 프로스트의 시의 인간과는 다르게 토마스의 시에서 자연과 인간은 괄호 안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전 우주적인 힘은 작은 줄기의 꽃에서부터 인간과 생명체 모두에게 적용된다. 두 시인의 입장은 선악과라는 지식을 얻으려는 인간은 그것에 대한 벌로 에덴(자연)에서 분리되고 여성은 출산의 고통을 남성은 노동의 고통을 받은 서양의 가톨릭 종교관과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같이 초현실적인 힘에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것의 양가성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동양의 불교 종교관의 차이가 대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