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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Apr 17. 2022

68. [문득/생각] 낡아버린 가부장제.

 우리는 영화, TV쇼, 문학 등에서 심심치 않게 여성이 타자화, 대상화되는 것을 접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브레이브걸스’라는 여성 걸그룹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일정을 마무리한 그녀들을 대형버스로 바래다주면서 지친 하루를 신나는 노래와 인터뷰로 곁들여 스트레스를 풀자는 콘셉트이었다. 격식을 차리는 인터뷰 자리에서 못한 속내를 편하게 털어놓자는 취지는 그냥 변명처럼 보일 정도로 날 불편하게 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너무 짧은 치마를 입어서 앉으면 속옷이 보일 것 같은 차림을 한 그녀들을 배려한다고 담요로 무릎을 덮어줬다. 거기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그녀들을 둘러싼 네 명의 30- 40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하얀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고 질문에 대답하면서 수줍게 웃는 그녀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장면이나 좁은 버스 안에서 춤과 노래를 하는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보던 장면이었다.



 또한 최근에 읽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 또한 나에게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여성이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하니까 권위주의적 남편이 고기를 먹으라고 명령했으나 불복종했다. 그러자 그녀를 혼내려 시댁 식구들에게 일러바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고기를 굽고, 못 먹겠다는 아내의 손발을 포박하고 뺨을 갈기며 고기를 억지로 먹인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취향과 권리는 없는 셈이고 여성은 순종적이고 잘 꾸며야 하며 남자를 위해 봉사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억압의 대상으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다문화가정, 외국인, 동성애자, 애완 묘와 견, 채식주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것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데올로기적 남성중심주의는 어떠한 대상의 주체적인 아이덴티티를 지운다. 그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이나 옷차림 혹은 그들의 윤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인지 아닌지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직업이 곧 그를 말하며 그가 사는 집, 타는 차와 사는 집이 곧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로 작동한다.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맞이한 비극의 원인은 단순히 그녀의 식성이 잡식에서 채식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고기 냄새를 못 맡겠다며 고기로 만드는 요리를 거부한 것은 곧 육식을 즐겨하는 남편을 위해 시중을 들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고 그것은 이데올로기 속 아내로서 해야 할 역할을 못한 직무유기나 다름이 없는 것이며, 아버지의 고기를 먹으라는 명령에 대한 거부는 딸로서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이므로 가부장제의 반역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회는 변해야 한다. 전통과 과거에 사로잡혀선 문제들만 생길 것이다. 인간의 삶의 방식도 바뀌고 인터넷의 발달로 쉽게 다양한 국가를 탐험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우린 더욱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으며 더욱 넓은 비교대상들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 운동이 성행하면서 여성과 같은 소수자의 권리신장 운동으로 다른 나라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어나게 된다. 변화란 불편하다. 인권신장 운동은 그 누구에게 피해를 주자는 것도 아니고 편을 갈라서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잘 살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다른 음식취향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는 것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 남성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에 불편한 부분을 수정해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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