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평생을 함꼐하는데 결심이 필요한걸까?
연인을 만나다 보면 '이 사람은 내 평생을 함께해도 되겠구나.'란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나도 현재의 애인을 만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었다. 2년을 함께 보내면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는 정리나 청소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가 잘하기 때문에 걱정 없다. 대신 그는 요리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서로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왔고 나는 한국에서 긴 시간을 살았다. 하지만 난 그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라는 큰 프레임을 들이대는 순간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인 내가 부당한 일에 화를 냈을 때 그것에 한국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 화가 일본 식민지를 우상화해서 그들에게 자격지심이 들었기 때문에 부당한 상황에 참지 못하는 투쟁심이라고 해버린다면 나의 부당하고 억울한 마음은 그 앞에 한국성이 둘어쌓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일랜드인이기 때문에 그렇고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는 가족들을 정말 살뜰하게 챙긴다. 그에게는 5명이라는 형제자매와 5명의 조카가 있다. 한국에서 매일 여름 한 달, 겨울 한 달을 아일랜드에서 보낸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가족들에게 전화하면서 그들이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물품들을 국제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처음에 그것은 가족을 (나와는 다르게) 애틋한 마음이 있어서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가끔씩 보이는 그의 유아기 같은 태도, 예를 들어 음식을 흘리면서 먹고 방은 전혀 치우지 않거나 옆에서 소비를 막거나 과한 군것질을 내가 대신 막아줘야 하는 등, 는 초반엔 내가 그에게 엄마처럼 필요한 존재로 느껴져 좋았으나 지금은 지치기까지 한다. 문제는 과한 군것질은 영양 불균형과 비만을 불러오고 비만은 내년 여름옷을 맞지 않기 때문에 옷을 또 사게 된다. 이것은 2년째 계속된다.
그의 나이가 30세인데 가족들과 거의 25년들을 함께 살았고 돈을 꾸준히 벌어본 적이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소비하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 그의 한국 집엔 각 국가에서 사 온 그림이나 화분들이 즐비하고 원룸이란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20-30종의 화분을 베란다 이곳저곳에 매달아 뒀다.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가 할인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보지 않고 덜컥 산다. 할인을 받고 샀기 때문에 현명한 소비를 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자부심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그를 보고 있자면 조금은 실망감이 들기도 하다. 한 번은 그에게 "난 명품 같은 옷 보단 내 몸은 잘 가꿔서 무지티를 입는 게 훨씬 좋은 거 같아."라고 했고 그의 명품 쇼핑에 대해 언급했더니 그는 "취향의 눈높이가 각자 다 다르니까."라며 꽤나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그는 꽤 풍자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날 선 무기가 숨겨져 있다고 느꼈다. 내가 디자인이나 명품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그의 말은 '서민들의 눈에는 이 명품의 진정한 가치를 알라볼리가 없어.'라는 말로 들린다. 내가 예민한 걸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명품을 소비하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공격이라 생각되는 말에 웃음기 없이 차갑게 반응한다. 아마도 그와 같이 살아도 될까라는 물음 앞에서 가장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부분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까?'
유튜브의 한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는데 장기간 지속되는 연애를 하고 싶다면 '각자의 약점을 언급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장점을 부각해주는 대화법'을 하라고 전했다. 그의 가족 중 큰형은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하며 둘째형은 알코올 중독 때문에 치료센터에서 나온 뒤로 술이라고는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서 일하는 직장동료들은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이 많은데 80프로는 비만에 과체중이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그가 지내온 그리고 지내고 있는 환경에서 그는 그래도 자신이 가장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며 내가 사는 방식은 '히피족'이라고 딱 분류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와 나의 정체성과 생활들을 분리시키고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행위로 보인다. 그의 삶의 방식이 중독적인 방향으로 가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그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흰 벽지에 조그마한 얼룩에 너무 집중하지 마.' 한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결심'을 할 정도로 힘든 일이어야 하는가? 나는 앞으로 매일 아침 달리기를 '결심'하는 것과 같은 막중한 사명감을 띠고 장대한 삶의 변화에 맞설 것을 굳건히 다짐해야 하는 건가? 서서히 스며들며 나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방법은 사실 드문일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