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알게 돼서 다행이야
21년 4월,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간호사라는 직업과 작별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힘들다,라고 나오던 말들이 쌓이면서 결국 건강이 안 좋아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심지어 퇴사를 하기 전부터 쌓아온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찰랑거려서, 갑자기 터질까 봐 얼마나 걱정되던지..
같이 일하는 샘들에게 '요즘 왜 저래..'라는 말을 들을까 봐, 몸이 안 좋은 와중에도 평판을 신경 쓰고 또 신경을 썼다. 다행히 같이 일한 사람들은 모두 착하게 기억했다..
그렇게 건강을 잃고 퇴사하면서 찾아온 건, 해방감이었다.
'주말이라는 게 있어?'
'명절? 공휴일? 그런 게 존재하는 거였구나..'
정말 신기한 나머지, 퇴사를 하고 사무직으로 이직을 한 상태에서도 마냥 좋았던 것 같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다니, 꿈만 같아서..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것도 잠깐이었고 오히려 그 시간들이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함이 차올랐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블로그를 시작했다.
갑자기 뜬금없는 전개인가 싶지만, 그 공허함을 해결하려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블로그 강의가 나를 SNS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서른이 넘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돌아봐도 나를 바꿔준 시작들에는 서른이 넘어서 만나게 된 5가지가 있었다.
1. 다이어리
지금에야 그 매력을 알고, 주위에 써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쓰는 게 너무 재미없었다.
일-집-일-집, 어쩌다 약속.
그리고 다시 반복..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힘들었고, 매일 똑같은 일상들만 적다 보니 흥미를 잃었다.
새해마다 사게 되는 다이어리는, 기록으로 쌓이는 게 아닌 차곡차곡 서랍장 깊숙하게 쌓였다.
어쩌다 서랍 정리를 하게 되면서 읽으면 재밌기는 했지만..
사실 그때뿐이었다.
그러다 만난 책 두 권이 생각의 흐름을 바꿨다.
내가 왜 기록을 해야 하는지,
기록을 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매달 목표가 생겼고 그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내가 너무 신기했다.
나는 계획적이지 못해, P라서 그래.
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내가 계획적으로 살다니..
미뤄두기 바빴던 나를 실제로 움직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간을 통해 점점 더 나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2. SNS
또 다른 기회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
블로그를 통해 시작하게 된 인스타그램.
글을 쓰면서 시작하게 된 브런치.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하게 된 인스타툰.
인스타그램으로 함께하게 된 스레드까지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차곡차곡 쌓아가는 바뀌는 환경에 따라 내 주위 사람들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바뀌면서 보는 시야가 달라졌고, 내가 꿈꾸는 것들이 변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점점 달라지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했구나,
나는 이런 걸 배우고 싶어 했구나,
내가 원하는 결은 이런 거구나..
그런 연결들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기회들이 찾아왔고, 그렇게 또 나에 대해서 알게 됐다.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허함을 참을 수 없었구나.라는 것도.
3. 운동
친해지고 싶었지만, 친해지기 제일 어려웠다.
누워있는 거 좋아하고,
누워있으면 좋아하고,
누워있고 싶었던 사람..
건강을 위해서 헬스장도 등록해 봤지만 매번 기부로만 끝나서.. 다시는 등록 안 해야지 하다가, 어김없이 찾아온 새해 버킷리스트에 적힌 다이어트 때문에 시작한 PT를 받다가 결국 무릎 통증을 얻게 됐다.
그 뒤로 운동과 더 멀어졌고, 다시는 운동을 버킷리스트에 넣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30대가 되면서 하루하루 느끼게 됐다.
그렇게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다이어트가 아닌 교정과 재활을 위해 시작하게 된 필라테스가 최애 운동이 됐다.
버라이어티 하게 살이 빠진 건 아니지만..
하나의 운동이 재밌어지니까 다른 운동에도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게 진짜 최고의 장점인 것 같다.
올해 목표는, 요가. 새로운 취미 운동을 찾아야지.
4. 유럽 여행
작년, 새로운 도약을 위해 퇴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또 다른 우연과 맞아떨어지면서(?) 나를 위한 생일선물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 커다란 생일선물이 불러올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떠났던 아름답지만 낯설고 너무 어려웠던 그곳에서.. 정말 펑펑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낯선 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이때 이후로 진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고,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나에 대해 파고들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익숙함을 벗어나니 진짜 내가 보였다.
이 여행을 다녀와서 화실에 다니게 된 것도, 내가 좋아하는 걸 찾게 된 계기였다.
5. 라이프코칭
책도 읽고 다이어리도 쓰고 있고,
환경도 바뀌었고,
강의도 듣고 있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있으니
이제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나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해본 적도 없었고, 스스로를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때부터 혼란스러웠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맞는 건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건지,
또다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이 김에 제대로 더 파고들어야겠다.
물론, 라이프코칭을 받았다고 처음부터 아 이게 나야-라고 확신을 하게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조각씩, 한 조각씩 퍼즐 맞추듯 나를 맞춰나가면서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고, 알게 됐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 삶에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어떤 삶을 그려나가고 싶은지, 정리할 수 있었다.
/
이 선택들이 진짜 나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일찍 알게 됐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30대에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일기일회, 오늘의 한 줄 : 앞으로 나랑 더 친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