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러브의 두 번째 레터
봉인 해제!
안녕, 여니야. 오늘도 많은 사람들 틈에 치여 출근 중이니? 혹은 먼 목표를 향해 공부하는 중이니?
그것도 아니면 집에서 푹 쉬는 중이니? 무얼 하고 있든, 모두들 각자 나름의 전쟁터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겠지. 이 짧은 글이 오늘 하루 여니에게 조그마한 응원과 울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 오늘 레터어리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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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남들과 잘 지낼 수 있게 도와준 문장을 소개하려고 해.
그 문장은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라는 문인이 집필한 ‘채근담’에 수록되어 있어. ‘채근’이라는
단어는 채소의 뿌리를 뜻하는데, 뜻처럼 ‘채근담’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소박하고 맑은 처세가 담긴 책이지. 이 책을 난 중학생 때 처음 읽었어. 논어, 맹자, 이런 것도 접해본 적 없는 데 어떻게
저 책을 읽게 된 걸까?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도 난 작은 채근담을 서랍에 부적처럼 보관하고 있어.
이 책을 알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야. 그래서 언젠가 여니에게 이 책을 꼭 알려주고 싶었어.
處世不必邀功 無過便是功
與人不求感德 無怨便是德
<채근담 28장>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성공만 따르기를 바라지 말라. 일을 그르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성공인 것이다. 남에게 줄 때 상대방이 그 은덕에 감동하기를 바라지 말라. 상대방이 원망하지 않으면
그것이 은덕인 것이다.
어렸던 내 마음에 가장 깊숙이 박힌 문장은 이거였어. 어린 날의 나는 내가 어떤 선물을 줄 때, 상대방이 그만큼 고마워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내심 속상하곤 했지.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곤 깨달았어.
내가 그에게 무언갈 준다는 것, 그것까지가 나의 소관일 뿐 이후의 감정은 그의 것이라고. 그래서 받은
이가 나에게 응답하거나 보답하지 않아도 서운해하거나 그를 채근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주는 기쁨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어.
비단 선물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이지. 내가 그에게 내 마음을 얼마만큼 준다고 그가 감동하거나 보답할 필욘 없는 거야. 그의 감정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내버려 두는 거지. 우리 가끔, 온정과 같은
마음마저도 그 거래의 종착지를 명명백백히 가리기 위해 인색해지곤 하잖아. 친구 사이에, 동료 사이에, 연인 사이에. 내가 널 이렇게까지 챙겼는데, 내가 네게 어떤 도움을 줬는데,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런 말들은 저 멀리 두고, 내가 마음을 줄 수 있었단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집중하는 거야. 상대방에게 준 내 마음을 그가 원망하지 않아 준 것만으로 감사하면서. 사실 이건 아직 나도
힘들다… 그렇지만 조금씩 노력하는 중이야.
아, 그리고 채근담에서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있어. 이건 남과 잘 지낼 수 있게 해 준 문장은
아니지만, 내가 채근담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문장이야.
水不波則自定 鑑不翳則自明
故心無可淸 去其混之者而淸自現
樂不必尋 去其苦之者 而樂自存
<채근담 151장>
물은 물결이 일지 않으면 스스로 조용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으면 저절로 밝다. 그러므로 굳이 마음을 맑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흐린 것을 버리면 스스로 맑아질 것이다. 또한 굳이 즐거움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괴로움을 버리면 저절로 즐거울 것이다.
어때? 난 이걸 읽을 때마다 마음이 산뜻하고 맑아지는 걸 느껴. 나는 행복한 일을 해야만 행복한 감정이 생길 거라고 착각하며 일생동안 더 기쁜 일, 더 보람찬 일을 많이 하려고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몰라.
그럴수록, 그렇지 못했을 때의 조바심은 더 커져만 갔지. 그러나 내 마음에 평안은 이미 존재했던 거야.
그러니까 중요한 건 즐거움과 기쁨을 억지로 찾아내어 내 마음에 채우는 게 아니라, 근심을 버리는 거지.
홍자성이란 사람이 당대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잖아. 난 그의 위대함이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해. 이 책은 언제 읽어도, 누가 읽어도, 유효하게 작용하는 구절이 많거든. 몇 백 년 인생 선배의 통찰력이 담긴 생활지침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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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살아가는 법 잘 몰라. 살면서 늘 배우고는 있지만. 어른이 되면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어른이 되도록 스스로 꾸지람하는 것뿐이지. 이 책 꼭 읽어 봐. 우리가 단순히 늙어가는 사람이 아닌,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거야. 분명하게!
P.S. 여니 들의 ‘채근담’ 인생구절은 무엇일지 너무 궁금해! 읽어 본 여니들, 읽을 여니들 꼭 알려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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