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몸 새벽글

'변함없이 서로'

새벽 글

by 지영훈

‘변함없이 서로’ 2022년 11월 18일


예술도 친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친구가 되는 것은 사귐의 지고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변함없이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친구일 것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 사랑하는 데 언제나 변함없이 높은 수준을 요구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놓고 생각할 때 예술이 친구가 되는 수준을 생각하면, 내가 높은 수준의 예술의 상태를 추구할지라도 아니면 아닐지라도, 내가 추구하는 예술에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자. 친구로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이다.


변함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는 시간을 계수하여 미리 알 수 있다면 사는 동안 시간을 잘 분배할 수 있을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더 오래 살고 더 긴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은 왜 일까? 단지 오랜 시간을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랑하는 벗을 더 오랫동안 보고 사랑하는 형제들을 서로 더 돕고 힘이 되고 사랑하는 무엇을 더 깊이 사랑할 시간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하면서 몸의 혈류를 좋게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이유도 사랑의 지고의 상태를 지속하기 위하여 가꾸는 것일 것 같다.


삶의 목적이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혼자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라는 언어나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어휘들에서 삶의 가치의 키를 발견한다. 그것들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쓰고 물질을 쓰는 이유를 찾는다. 그렇다면 내가 과연 변함없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변함없이 그럴 수 있을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를 변화시키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하여 구별하고 진단하여서 결단이 따라야 한다.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을 새롭게 구하고 오늘을 바탕으로 내일도 새롭게 구해야 한다. 어제 먹은 밥이 오늘을 어느 정도 지켜주어도 충분하지 않고 일주일 전에 먹은 영양이 나를 존재케 할 수 없듯이 기초적인 것은 매일매일의 영양처럼 내일의 추구 속에 매일의 결단이 시행되어야 하는 것 같다.


왜? 그래야 하나? 서로 변함없이 가야 할 것에 대한 추구 속에서 왜? 서로 사랑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 서로 친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 나에게 위기가 올 수 있고 내 친구에게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 때 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형제이고 궁극적으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사랑으로 세워진다. 지속의 힘을 키우면서 변함없이 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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