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던 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나 간절한 표정으로 갓바위 부처를 향해 절하고 있었다. 스님의 불경 소리에 맞춰서 절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간절한 한 가지가 있었다. 그에 반해 천장에 줄지어 달려있는 아름다운 색의 연등에 이질감이 들었다. 뒤에 펼쳐진 푸른 산맥의 경치까지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사람들과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절을 하고 난간에 기대어 경치를 가만히 바라봤다. 길고 넓은 삼각형의 산맥이 지평선까지 연이어 있었다. 그저 초록색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가까운 산은 연둣빛이었고 멀수록 조금 흐린 빛을 띄었다. 산 골짜기에는 손톱보다 더 작게 보이는 절과 차가 있었다.
맑은 공기를 힘껏 마시고 뱉으니까 살 것 같았다. 숨이 차분하게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내가 얘기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게 나를 편안하게 했다. 미리 준비해간 양초에 불을 붙여서 초가 모여있는 서랍에 조심히 놓고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까 멍하니 산을 보며 내 안의 무언가를 털어내고 온 것 같았다. 여러 개의 끝으로 뭉쳐져 나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실타래 같던 내 마음이 풀어낼 수 있는 한 가닥의 실을 찾은 느낌이었다. 가벼운 마음처럼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 “으아아.” 하면서 내려가는 나와 다르게 아버지는 스틱을 짚고 뒤로 비스듬히 누워서 내려가고 있었다.
“내려갈 때 이 스틱이 필요한거야. 이렇게 비스듬히 뒤로 누워서 가면 무릎이 덜 아프거든.”
아버지는 처음부터 내려오는 일을 준비하며 길을 나선 것이다. 수월한 길도 힘든 길도 그것대로 속도에 맞춰서 걷고, 새소리와 물소리에 조금씩 머리를 비워가며, 자식인 나를 뒤에서 보다가 힘들면 앞섰다. 정상에 다다르면 경치를 즐기고 내려갈 때는 좀 더 안정적으로 가는 법을 터득했다. 아버지는 이미 많은 얘기를 내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벌써 세 달이 지났다.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출근하고 고요한 집에 있으면 아버지와 산을 오른 날을 생각한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는 내 안의 목소리가 묻지 않는다. 그냥 다짐할 뿐이다. ‘이번에는 이거 해보자.’ 라고. 자주 행복한 날들이 이제서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