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던 날
회사를 그만뒀다. 빚을 갚기 위해 들어간 회사에서 더 많은 빚을 지고 나왔지만, 매 달 돌아오는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웠다.
‘이게 네가 진짜 원하는 길이야? 그래? 맞아?’
출근하는 버스에서도, 회의 중에도, 팀장님 앞에서도 귓전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처음 달아보는 서른이라는 나이, 간당간당하게 갚고 있는 빚 그리고 계약 연장을 앞두고 있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절을 다녔다. 우리나라 절은 산의 절경 속에 있었다. 스님의 목탁 소리를 들으며 절을 하면 풀 냄새가 설핏 났다. 조금 서늘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젖은 흙 냄새와 나무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편안한 마음 덕분이었는지 기도하며 절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말로 제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지켜봐 주세요.’ 라고 절을 했다. 그러면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도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특히 아버지는 걱정이 많으셨다. 20대는 맘껏 방황해도 30대는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만두면 어떤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아무 계획이 없다. 그저 쉬고 싶을 뿐이다. 여태껏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수한 이유 때문에 순위에서 밀려났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한 일은 이제서야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 얘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산을 가자고 했다. 젊었을 때부터 친구 분들과 산악 모임을 즐겼지만 이제는 무릎에 물이 차서 낮은 산만 다녔다. 나도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목마를 태워서 산을 올랐던 기억만 있을 정도로 등산은 하지 않았다.
팔공산을 갔다. 체력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차를 타고 가서 등산로 입구에서 1시간이면 갓바위를 볼 수 있는 코스였다. 생각보다 평탄한 길이었다. 스틱까지 갖고 온 아버지가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적당히 흐린 날씨에 산들바람이 불었다. 양 옆으로는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서 색색깔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흙을 밟는 기분이었다. 단단한 바위에 발을 딛는 것은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용을 쓰며 산을 올랐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빨리 정상에 닿으려고 입을 앙 다물고 걸었다. 숨이 고르게 쉬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완만한 길은 온데간데 없고 경사가 높은 바위 계단만 나오자 다리가 저릿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스틱을 짚으며 한발한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가면 돼. 천천히.”
헉헉대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리고 내 속도에 맞춰서 걸었다.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돌아보고 괜찮으면 다시 걷고 힘든 것 같으면 물을 건넸다.
내가 바보 같았다.
후련한 표정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정상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조금 늦게 올라가는 사람들도 힘들면 힘든대로 쉬어갔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마음은 급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
힘 주며 오르다 보니 허리까지 아팠고 이제는 갓바위를 보지 않아도 너무 힘들면 내려가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께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될 대로 되라지. 오르는 길이 점점 가팔라지고 스님의 불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버지의 등산화 끝만 보다가 고개를 드니 정상이었다. 정상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