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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Sep 02. 2023

언젠가, 안개처럼

지은의 편지 6

도영 언니에게



안녕, 언니. 그간 평안한 일상을 보냈을까? 언니에게 있었을 그간의 안녕을 상상하며 첫 문장을 적어 봐. 나는 막 속초에 도착했어. 나 자신에게 주는 휴식으로 주말 속초 여행을 택했거든. 아빠의 고향인 속초. 어렸을 적 내겐 가장 가까운 바다였지만 성인이 된 내게 가장 멀어진 바다 속초. 어릴 때 차를 타고 속초를 향할 때면 안개 낀 굽이 긴 산길을 지나오곤 했어. 잠시 졸린 눈을 붙이니 안개를 무서워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눈을 뜨자 지근거리에 15년 전 그때처럼 안개가 자욱해서 순간 아직도 꿈속인가 헷갈렸어. 그리고 생각했어. 이 길을 지나 숙소에 도착하면 그날의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야겠다고 말이야.


그 이야기를 하려면 엄마와 나의 치부를 꺼내야 해. 여태껏 나의 상처를 최대한 담담한 투로 나열하기는 했어도 우리 가족의 치부를 말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어. 그 안에는 나의 패륜도 녹아있으니까. 아마 엄마 역시도 그즈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치욕으로 여길거야. 당시의 우리는 서로를 여느 때보다 증오하고 있었거든.


중학교 1학년, 엄마가 집을 나가 아빠와 둘만 살고 있던 나는 종종 술 심부름을 해야 했어. 술을 들고 오면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은 언제나 같았지. 전방엔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 후방엔 퀘퀘한 술 냄새, 대야에 토 발사. 나날이 야위어 가는 아빠를 보며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어. 아빠는 야망이 큰 사람이지만 그와 대비되는 인생을 못 견딜 예민함을 가졌다고. “다음부터는 심부름이어도 술 안 줄 거래.” 술에 전 아빠에게 슈퍼 주인 아저씨가 한 말을 전했어. 이성을 잃은 채 밑 빠진 독처럼 술을 붓고 있는 아빠에겐 들리지 않는 메아리였겠지. 그런 나날이 반복됐어.


화창하다 못해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집으로 향하던 날이었어. 그 날따라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던 것도 같아. 훗날 “운수 좋은 날”을 읽었을 때 그날의 내가 떠올랐으니까. 집에 도착하니 안방을 따라 길게 늘어 떨어져 있는 피, 엎어져 있는 접시와 파편들로 난장판이 된 부엌이 보였어. 나는 너무 놀라 피를 따라 안방으로 달려갔어. 눈앞에는 도자 파편을 가슴팍에 꽂은 아빠가 피를 흘리고 있었어. 혼비백산한 나는 숨소리를 토해내는 아빠의 음성에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들었지.


아빠는 곧장 병원으로 이송됐어. 누군가 내 눈앞에서 들것에 실려 이송되는 것도, 구급차에 보호자 자격으로 올라탄 것도 너무나 생소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어. 그 와중에 아빠가 죽게 된다면 엄마와 나의 삶이 조금은 안녕해질까 상상했지. 그래, 아빠의 죽음을 찰나이나마 바란 것. 그게 내가 고백한 패륜이야. 그렇지만 아빠는 엄마를 때리거나 자신을 자학하기는 했어도 딸에게 모진 사람이 아니었기에 나는 죄악에 찬 상상을 치워내며 아빠의 손을 잡았어.


곧이어 내 연락을 받고 도착한 엄마는 아빠가 쓰러진 침대와 창구를 오가며 정신없이 어른의 일을 처리했어. 어른을 기다리는 아이의 역할밖엔 못 하던 나. 어른의 일을 마친 엄마는 내게 와 낯선 표정으로 말했어. “왜 신고했어. 죽게 내버려 뒀어야지!” 그런 엄마를 보며 울며 대답했지. “어떻게 신고를 안 할 수가 있어…” 나는 생각했어. 다시는 붙여낼 수 없을 우리 가족의 파열에 대해서 말이야. 아빠의 죽음을 상상한 나와 그 상상을 육성으로 토해내며 딸을 다그치는 엄마. 우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스스로 물었지. 어른을 기다리는 아이와 현실을 헤쳐가던 어른의 무게, 겨우 그 정도의 간극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지만 그것은 그때의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내 생각을 멈췄어. 잔혹하게 나를 다그치던 엄마의 모습도 잊으려 애썼어.


몇 주가 지난 후, 수술을 마친 아빠에게 찾아갔어. 아빠는 병문안 온 고모들과 엄마 그리고 내게 이제는 정말 술을 끊고 살아 볼 것이라 했지. 속초의 안개처럼 그날의 기억이 희미해. 하지만 아빠는 오랜만에 본 고모들에 대한 반가움과 되살아난 기쁨에서인지 조금은 밝은 표정이었던 것 같아. 퇴원 후 아빠는 정말 고모들이 있는 자신의 고향, 속초에 내려갔어.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야. 그날의 병문안이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거든. 아빠와 나는 어두운 얼굴로 작별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반년쯤 지났을까. 그제야 나는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듣고 속초에 가게 됐어. 정말 낯설었어. 속초라는 거대한 풍경 속 아빠만 사라졌을 뿐인데도. 발인하던 날 새벽 내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나를 떠나간 아빠와 내가 떠나보낸 아빠에 대해 생각했어. ‘우린 내내 미안해하겠지. 어쩌면 평생을. 나도, 아빠도 그리고 엄마도···.’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속초는 정말 달라졌어. 하지만 어릴 적 뛰어놀던 바다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라 조금 그립기도 했어. 다행인 건 비가 올 것을 각오했는데 고요한 속초 바다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거야. 내심 거친 바다를 보다 보면 잠잠했던 감정이 일렁일 것 같아 걱정했어. 어쩌면 일렁이는 마음을 편지로 누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니, 그래도 말이야. 어렸을 때 무서워하던 속초의 안개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 시간이 안개처럼 우리의 흐트러진 감정을 내려 앉히고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고 싶어. 그런 날이 온다면 엄마와 나의 치부도 죄책감도 조금은 누그러질 거라고 말이야. 우리의 아픈 기억이 언젠가 속초의 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려앉기를. 그런 날이 너무 먼 미래가 아니기를.


속초에서.



지은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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