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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Aug 27. 2023

엄마의 사랑은 늘 직선이라는 것을,

도영의 편지 6

지은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가깝고도 먼 시간인지 체감한다는 네 말에 공감해.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고 또 편지를 쓰는 한 달의 주기 동안, 나는 수없이 높고 낮은 감정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고는 해.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흐릿해질 만큼 정신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반짝이는 순간은 생겨나더라.


조카가 태어난 지도 거진 한 달이 되었어. 내가 어떤 마음이냐고? 언제나 사랑을 준 만큼 되돌려 받고 싶은 욕심 많은 내가, 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걸 조그만 아기의 사진 한 장으로 알게 되었달까. 버릇처럼 사랑의 크기를 저울질하는 내가 어떤 존재를 그저 사랑스러워만 할 수 있다니! 조카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가 말했던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 허락된 존재’라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요즘이야.



엄마가 자식에게 쏟는 정성과 시간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깊고 길더라. 엄마는 아기가 생기기 전부터 그 존재를 기다리고 배 속에 품고 있는 9개월 동안 온 마음을 쏟아부어. 그리고 태어난 아기만을 지켜보며 외부와 단절된 채 몇 년의 시간을 떠나보내지. 그렇게 몇 장의 달력을 넘겼는지조차 가늠되지 않는 날들이 지나면, 그제야 아기는 아이가 되고 어설프게 기억의 경계로 걸어 들어가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던 이 당연한 사실을 하루 종일 아기를 보느라 지친 언니의 얼굴을 보면서 처음으로 체감했어.


그래서 엄마가 떠올랐어. 가끔 엄마에게 다쳤던 마음을 꺼내놓았던 날이면 먹먹한 목소리로 이런 대답이 돌아올 때가 있었거든?


엄마는 너랑 언니한테는 후회 한 점 없어.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 매 끼니 정성 들여 요리해 먹였고, 옷 하나 입히는 것도 순한 걸로 고르고 골라서 다 손빨래해서 널었어.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키웠어 너흴. 


내 기억 속 엄마는 아빠와의 잦은 다툼과 바람 잘 날 없었던 외갓집 일들에 마음을 뺏겨있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어렵게 꺼낸 내 말에 사과가 아닌 저런 대답이 되돌아올 때면 원망스러운 마음뿐이었지. 난 만족스럽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데, 그럼 이 생채기들은 누구에게 따져 묻고 알아달라 요구해야 하는 건지 억울하기만 했어. ‘후회 한 점 없다.’는 말은 그저 원망을 듣기 싫은 엄마가 하는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 잘해줬다고 그 후의 일들에 면죄부가 생기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었지.


그런데 지쳤지만 행복해 보이는 엄마가 된 언니의 얼굴에 기억도 안나는 젊은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던 순간, 후회 한 점 없다는 엄마의 말이 ‘난 잘못한 것 없다’는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난 최선을 다해서 너희를 사랑했어.’라는 사랑 고백이었다는 걸 알았어. 왜, 가끔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사랑 중 무엇이 더 큰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면 난 항상 자식의 사랑이 훨씬 크다고 했거든. 엄마한테 사랑을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컸으니까. 말했잖아, 난 늘 사랑의 크기를 잰다고. 그런데 처음으로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언제나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엄마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엄마의 사랑은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날 향하고 있었고,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절대 끊기지 않을 테니까. 엄마의 사랑은 늘 직선이라는 것을, 엄마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돼서야 깨달아.



내 인생에서 엄마가 되는 날이 올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했던 모진 말들을 반성하게 되는 요즘이야.



도영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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