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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Sep 10. 2023

서로를 통해 내가 되어

도영의 편지 7

내 편지의 수신인, 지은에게



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7개월이 되었어. 편지를 쓴다는 건 무얼까. 어떤 편지는 망설임 없이 단숨에 써 내려가지지만, 어떤 편지는 한참을 붙잡고 있어도 도통 채워지지 않기도 해. 지난번 네 편지를 받고,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일상의 틈을 비집고 계속해서 나타났었어. 그런데 막상 편지를 쓰려 앉아있는 지금은 떠올랐던 수많은 말들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몰라 막막한 기분이 드네.


난 너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편지를 통해 네 속마음을 알게 될수록 너를 잘 안다고 여겼던 내 오만을 계속 깨달아. 속초로 여행을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모부를 떠올리지 못했고 이모부가 돌아가셨던 때쯤 있었던 일들도 몰랐어. 당연히 다시 찾은 속초에서 네가 했던 생각들 또한 몰랐지.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고 있지 않았다면 모두 모른 채로 살아갔겠지. 그게 마음이 아렸어. 이렇게 가까운 네게 나는 평생 존재조차 모를 아픔들이 있다는 게, 미안했어.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몰랐던 아픔들이 내 아픔과 닮아있어서 우리의 멈과 가까움을 동시에 실감했지 뭐야.


고등학교 1학년쯤이었던가. 네가 이모부의 죽음을 상상했던 것처럼 내가 아빠의 불행을 상상했던 그 밤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그날따라 집이 텅 비어있었어. 캄캄한 거실에 앉아있는데 전화가 울렸지. 엄마였어. “오늘 일이 바빠서 늦어질 것 같아. 아빠는 곧 집에 도착할 거야.”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콱 조여왔어. 지금 집에 아무도 없는데 아빠가 곧 온다니. 그럼 아빠랑 단둘이서 집에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든 생각. 아빠한테 교통사고가 나서 집에 늦게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럼 아빠랑 단둘이 있지 않아도 되겠지. 그래, 스스로를 통제할 틈도 없이 난 아빠의 불행을 저주하고 있었지.


다행히도 그날 밤 아빠는 온전히 집으로 귀가했어. 하지만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가라앉지 않았지. 그런 상상을 해버린 나 자신이 너무 끔찍했으니까. 몇 달 동안을 계속 괴로워했던 기억이 나. 별 것 아닌 생각이라고, 의도하지도 않았다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할 수는 없었어. 알고 있었거든. 그 순간의 상상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홧김에 해버린 투정이나, 치기 어린 생각이라면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둘 다 아니었지. 유년시절부터 반복되었던 아빠의 외도와 항상 울고 있던 엄마, 지친 상태로 밤늦게 들어와 자식들을 경멸하듯 바라보던 아빠의 눈빛. 언젠가 실수로 깼던 그릇에 돌아왔던 ‘그래서 널 싫어하는 거야.’라는 말. 아빠에게 맞아 붉어졌던 뺨과 허벅지. 난 어느새 아빠의 불행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어.


때로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였어. 언제나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일했고, 가끔은 따뜻한 말들을 건네며 손을 꼭 잡아줬었지. 그래서 나는 아빠의 불행을 상상했던 그 순간을 속죄하고 또 속죄할 수밖에 없었어. 나쁜 년. 어떻게 자식이 돼서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랄 수 있어? 끊임없이 나를 다그쳤지. 아빠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 고해했어.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밤의 상상은 내게 패륜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지.


그런데 패륜이라 불렀던 그 일을 죄악이라는 단어로 네게 들었을 때 난 단 한 가지 생각만 했어. 그날 이모부가 돌아가시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다. 아빠의 죽음을 상상한 것조차 죄악이라고 여긴 여리고 어렸던 네가 스스로를 탓할 또 다른 이유가 생기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어떻게 이모부의 죽음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 다쳐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아빠를 보며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도 않았지. 그냥 안아주고 싶었을뿐... 나의 짧은 상상은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춰둔 죄였지만, 네가 한 상상은 그저 안쓰러움이더라. 그제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그 밤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어. 


자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다고 여겨 속죄하기에 바빠, 그동안 한 번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생각보지 않았어. 그런데 네 편지를 읽으면서 깨달았지. 내가 그만큼 불행했던 거야. 너무 불행해서 나만큼 아빠가 불행하기를 바랐던 짧았던 복수심. 혹은 오직 그만 불행하고 싶어 불행의 원인을 없애버리고 싶은 간절함. 너만큼이나 어렸던 나도 안쓰럽더라. 그제야 나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용서할 수 있었어. 



지은아,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통해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나 봐. 내 편지가 네게도 과거의 너를 용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라.


또 한 통의 편지를 보내며,


도영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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