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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Sep 17. 2023

너는 나를 위로해 줘

지은의 편지 7

8월의 끝자락에서, 도영 언니에게



고마워.


언니 말대로 그런 날이 있나 봐. 지난 두 주 동안 나는 어떤 편지는 한참을 붙잡고 있어도 채워지기 어렵다는 언니의 말이 생각났어. 언니의 편지를 읽고 나의, 언니의 죄책감에 대해 되물었지. 내가 나를 용서하기 어려울지언정 언니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 그렇게 서로의 짐을 지워준다면 우리는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까? 어떠한 해답도 찾지 못했지만, 세월의 한 챕터 한 챕터마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언니가 있어서 감사했어. 언니의 속 이야기를 털어놔 줘서 고마웠어. 그래서 8월의 마지막 주에 건네는 이 편지를 고마움으로 시작하고팠어.


나는 우리가 평생 서로의 곁에서 가까운 사촌 형제로 지내오며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고 생각했어. 평소 우리의 일화를 지인들에게 말할 때면 사촌과 그렇게 가까이 지내냐며 신기해하곤 했으니까. 여느 친구들과는 다른 유대감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못 할 말이 없었잖아. 하지만 나 역시 지난번 언니의 편지를 읽으며 알지 못했던 언니의 일화에 놀랐어. 어쩌면 우리는 이미 서로의 이야기를 말했을지도 몰라. 방학이나 명절 때마다 한데 누워 얘기하던 우리의 안방에는 푸념과 자조가 공기 중에 떠다녔으니. 서로의 일화를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았어.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어떤 것을 언니에게 얘기했는지, 얘기하지 않았는지 걸러내기조차 힘들어. 우리는 때로 얘기할 때 ‘내가 얘기한 적 있었나?’ 같은 질문을 건네며 말하기도 하지. 어렸을 적에는 우리가 얘기하는 일들이 도돌이표 같이 반복되는 것 처럼 느껴졌어. 불행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닮아있으니까. 내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나. 이제 불행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그해 8월은 길었어. 여느 해의 여름과 다른 점이라면 유독 피곤함을 많이 느꼈다는 것. 특출나게 슬프거나 화나는 일 없이 지루했지만, 그 감정이 나를 좀먹는 기분이 들었어. 감정마저 땀으로 배출시키는 계절이 그저 지나가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었어. 내내 피곤한 눈을 끔뻑거리며 일상의 간질거림을 기다려야 했어. 이대로 감정이 메말라 버리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면서 말이야.


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던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었어. 그리고 꿈을 꿨어. 지난해에 돌아가신 아빠가 내 다리를 어루만져 주던 꿈이었어. 어린 시절 나를 토닥여 주던 그때 그 기분. 떠나간 아빠가 돌아온 것 같아 꿈에서나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깨달았어. 그 기분과 감촉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눈을 떠보니 큰삼촌이 소파에 있는 내 다리를 만지고 있었지. 삼촌의 손은 허벅지 근처까지 닿아 있었어. 기분 탓일까. 바지 고무줄 사이로 무언가 빠져나가는 감촉을 느꼈지만 나는 이내 불결한 생각을 접었어.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어. 거실이나 소파에서 자는 내가 눈을 뜨면 큰삼촌이 내 다리를 만지고 있는 걸 발견하는 일이. 비몽사몽인 나는 삼촌에게 퉁명스럽게 하지 말라며 발을 걷어냈지. 어린 중학생 조카의 다리를 만지는 게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자기 암시하면서 말이야.



잠을 오지 않던 새벽, 나는 TV 앞에서 이부자리를 깔고 눈을 감고 있었어. 그해 8월의 나는 낮 내내 졸음을 참다가 새벽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아 힘들어했지. 할머니 집 거실 큰 창에 큰삼촌이 차를 몰고 들어오는 불빛이 보였어. 가끔 일과가 끝나고 나면 할머니 집에 와 밥을 먹는 큰삼촌이었기에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눈을 감았어. 하지만 여느 날과는 달랐지. 삼촌은 내 이부자리 옆에 앉아 텔레비전 전원을 켜고 채널을 돌렸어. 환한 불빛 사이 아주 작은 음량으로 살이 뒤엉키는 소리와 연이은 신음이 들렸어. 무서웠어. 애써 둔감하게 넘겼던 모든 일들이 내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큰삼촌은 곧이어 이불 속을 비집고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고, 나는 소리를 질렀지. 지금 뭐 하는 거냐면서 말이야. 잠결에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거실로 뛰쳐나온 할머니는 곧이어 큰삼촌이 그럴 리 없다며 나를 나무라며 화를 냈어. 몸서리치던 나는 어떻게 할머니가 그럴 수 있냐 울분을 토했지. 그날, 나는 할머니를 밀쳤어. 다리가 불편했던 할머니는 바로 바닥에 쓰러지셨어.


그즈음의 나에게는 늘 불행이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어. 그럼 그렇지. 다시 찾아왔구나.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 나를 슬프게 했던 건 누구도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야. 심지어 우리 엄마까지도.


엄마는 그 일을 듣고 나를 위로하지도 큰삼촌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어. 몇 주가 지난 후, 엄마는 큰삼촌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며 밥을 내어줬어.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아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었던 걸까. 당시 할머니 집의 모든 생활비는 큰삼촌이 냈었으니 얹혀살고 있는 처지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정신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엄마에게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불행이었을지도. 큰삼촌에게 화 한번 내지 않는 엄마를 보며 여러 갈래의 변명을 대신 입혀줬어. 불행의 도돌이표 안에서 살고 있던 14살의 나는 스스로 말할 수밖에 없었어. 너는 나를 위로해 줘야 해. 미래의 네가 나를 위로해 줘야 해. 그리고 화내줘야 해.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당시의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아직도 엄마가 원망스러워. 엄마가 나를 죽이려 협박하던 날도, 내 방문에 칼자국을 내놓던 날도, 아빠를 대신해 나에게 화풀이를 한 날도 이렇게 원망스럽지 않았어. 그날 이후 나는 엄마에게 엄마의 역할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됐어.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됐어. 나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살아가. 오직 나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거든. 다가가지 않으면 원망스럽지도 않을 테니까.


이건 그 나름대로 괜찮은 걸까?

이대로 누군가에게 기대는 방법을 잊는 건 아닐까 두려워.



지은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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