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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Oct 01. 2023

결국 우리는 언젠가

지은의 편지 8

정신없는 한 주였어. 최근에 이사를 하게 된 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어. 집들이 날짜를 정하고 있었는데 미뤄야할 것 같다며 운을 띄웠지. 갑작스레 아버지가 쓰러졌다며 울먹이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어. 전주까지만 해도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고 했어. 친구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애써 태연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울음을 터트렸어.


그리고 금요일 아침, 친구에게 부고 문자를 받았어.
나는 퇴근 후 근처 마트에서 옷을 사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어.



언니, 잘 지냈어?
나는 조금 긴 일주일을 보낸 것 같아.



남들도 다 겪는 아픔이야.


나는 친구의 슬픔을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친구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어. 오롯이 그 무게를 떠안으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어. 퉁퉁 부은 얼굴로 애써 웃어보이는 그 아이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어. 남들도 다 겪는 아픔이라는 사실이 지금의 아픔을 상쇄시켜줄 수 있을까.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아빠의 장례를 떠올렸어. 그 날의 내가 나를 어떻게 위로했는지 말이야. 언젠가 이렇게 될 일이었어. 나는 그렇게 되뇌었던 것 같아. 남들도, 언젠가, 결국엔… 그 말들이 아픈 순간의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걸까.


사실은 나도 기대하고 싶어. 언니의 지난 편지를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어. 하지만 부모님에게도 변변한 위로의 말을 듣지 못한 내가 누구에게 그 무게를 떠안길 수 있겠어. 나는 그렇게 위로를 바라지도 않고, 위로할 줄도 모르는 어른이 된 것 같아. 아버지를 잃은 친구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하는. 본인의 상처에 질려 결국 타인의 아픔에 공감도 위로도 못 하는 엄마처럼. 엄마의 그런 면은 닮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엄마를 일순위로 여기잖아.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이리 저리 치이는 엄마를 나는 항상 위로했던 것 같아. 그때는 그랬어. 정말로 엄마가 행복했으면 했어. 엄마는 항상 불행해했으니까.



그 날을 생각해. 고속버스 안, 엄마와 내가 서울에서 포천으로 가는 차를 탔던 날. 엄마는 아빠에게 맞을 때마다 포천으로 내려가곤 했어. 그 날 역시 마찬가지였지. 쿰쿰한 공기와 고속 제한 안내 음성이 귀를 찌르던 버스 뒷자석. 울컥울컥 메스꺼운 속을 참는 엄마는 삶의 무게에 짓이겨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 속도 위반 안내 음성이 계속해서 들리던 고속버스는 지금의 우리 같았지. 나는 팔과 다리에 느껴지던 엄마의 푸석한 살결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어. 어머니라는 지위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자책했고 수많은 날 그녀를 멍들게 한, 아빠를 원망했어. 서울로 돌아가면 또 어떤 일이 그녀를 힘들게 할까? 내 앞에서 또다시 울음을 터트릴 엄마가 눈에 그려졌어. 십 년 남짓 살아왔던 인생 속에 얼마나 엄마의 행복을 바랐는지. 그렇지만 그 소망이 이뤄질 수 없음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깨달았어.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엄마는 드디어 가정 폭력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불행했지. 아니, 더 불행해했어. 엄마는 평온한 일상에서도 불행을 찾는 사람같았어. 불행은 불행을 낳고, 엄마는 점점 더 우리의 슬픔에 매몰되어갔지.


언니, 나는 더이상 엄마에게 어떠한 위로의 말도 꺼내지 않아. 슬픔에 매몰된 엄마와 함께 허우적대고 싶진 않거든. 하지만 말이야. 이런 나도 결국 엄마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 나는 어느 순간 메마른 어른이 된 것 같아. 타인의 슬픔에 눈물이 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런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까.


남들도 결국엔… 이렇게 메말라가는 걸까?

결국엔 나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없을까 두려워.



지은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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