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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Sep 24. 2023

밤은 불행을 따라온다

도영의 편지 8

기대를 버리면 실망할 일도 없어.


엄마는 종종 그렇게 말했어. "도영아, 기대를 버리면 실망할 일도 없단다." 엄마가 딸에게 알려주는 삶의 교훈과도 같았던 그 말은 짙은 체념을 안에 숨기고 있었지. 시간을 지나 아빠를 가리켰던 문장은 나와 형제들에게 향했어. "난 이제 자식들한테 기대 같은 것 안 한다. 그렇게 너희 마음대로 살아. 엄마는 다 포기했으니까." 그리고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하게 됐지. "엄마는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아." 조금은 가벼워진 하지만 내 마음을 더 아리게 했던 쓸쓸한 목소리로 말이야.


네 편지를 읽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있었던 엄마의 그 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어.


다가가지 않으면 원망스럽지도 않을 거라는,

지은에게.



지은아, 너는 기억하고 있어?

나를 괴롭혀 왔고 아직도 괴롭히고 있는 내 20대에 일어났던 그 끈질긴 불행을.


20대 초의 나는 불행한 가정사가 부끄러운 것도 감춰야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어. 나의 아주 사적인 불행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서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지. 아무렇지 않게 말할수록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럴수록 과거의 불행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 거니까.


무슨 계기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아. 하지만 당시 나는 정말 그게 올바른 일이라 여겼어. 그래서였을까? 그 믿음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을 때, 강했던 믿음만큼 내 몸에 깊게 박혔던 것은.


한 두 명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런데 공통적으로 서울로 상경해서 혼자 자취하는, 돈 없고 가정환경이 안좋은 어린 여자애들이더라고요. 그래서 언니 생각이 났어요.


아빠 나이의 그 남자를 나는 정말 아빠처럼 의지했었어. 내 아픈 가정사를 모두 털어놓고 위로받았다 여겼지. 하지만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나는 실수라 믿었던 그 사람이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던 일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내 불행을 털어놓았던 날 그 사람의 빛나던 그 눈동자가 위로가 아닌 호기심이었음을 깨달았지. 그 사람에게 내 가정사는 노리기 좋은 약점일 뿐이었고 나는 욕구를 채우기 좋은 적당하고 바보 같은 갓 성인이 된 여자애일 뿐이었지. 왜 그렇게까지 순진했던 걸까. 친분도 별로 없던 후배가 그에게 당한 또 다른 피해자를 찾을 때 바로 나를 떠올렸을 만큼, 나는 왜 그렇게 바보 같았던 걸까.


끝없는 자책과 수치심, 분노와 배신감, 더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는 공포... 멈췄던 악몽은 다시 시작됐고 밤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울었어.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날들이었지. 그런 암흑 같았던 시기에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어. 아빠가 나와 나이가 거의 같은, 아주 어린 여자와 재혼했다는 전화를.


아직도 기억나. 그 시기 아빠를 따라 산속 요양원에 계신 친할머니를 보러 가게 됐던 날이. 아빠의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가 미친 듯이 징그럽게 느껴져 토기가 올라왔던 그곳의 풍경이.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감당이 안 되어 그저 목석처럼 가만히 있었던 내가.


그런 내가 엄마는 원망스러웠나 봐. 엄마는 딸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와 재혼한 아빠에게 화내지 않는 나를 배신자라고 불렀어. 누가 봐도 피해자인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딸에게 상처받았다고 했지. 엄마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거겠지... 혼잣말을 하며 엄마를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 화내지 않는다고 해서 화나지 않은 게 아니고 소리치며 울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은 게 아닌데.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이 내겐 받아들이기 힘든 너무 큰 상처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라는 걸. 나도 피해자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엄마는 왜 모르는 걸까, 끝없이 질문했지.



알아. 엄마는 그냥 너무 힘들었던 거라는 걸. 아빠의 일방적인 배신에 자식들이 자기편이 되어주기를 바랐다는 걸. 엄마는 내게 ‘기대’했던 거겠지. 내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엄마는 또 한 번 자신의 기대를 꼭꼭 접어야 했겠지. 그래서 엄마를 원망하진 않아. 더욱이 엄마는 당시 내가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럼 나는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 걸까. 나도 너무 힘들다고 더 티를 냈어야 했나? 온몸으로 나는 지금 받아들이기 힘든 불행을 겪고 있다고 외쳤어야 했던걸까?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불행은 꺼내어놓음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라는 내 믿음은 이미 산산조각 난 후였는 걸. 어떻게든 어둠에 끌려 내려가버리지 않으려 버티고 서있는 것만이 내 최선이었어. 비록 그런 내 모습이 엄마에겐 실망만 줬더라도 말이야.


그리고 실은 나도 엄마에게 기대했었거든. 불행했던 유년기가 불러온 또 다른 비극을 엄마가 미처 알지 못하더라도,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를 만나는 아빠만으로 내가 충분히 상처 입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아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랐어. 하지만 남의 불행은 나의 불행보다 절대 가치 있지 않더라. 비록 부모자식 사이일지라도 말이야. 이건 받아들여야만 할 세상의 이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마음을 찔러와.


어느새 나는 엄마와 똑같은 문장을 중얼거려.


나는 이제 기대하고 싶지 않아.

기대하면 실망만 찾아오는 걸.



도영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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