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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Oct 15. 2023

아빠를 기억하는 방법

도영과 지은의 밤새운 대화 7

밤새운 대화


할머니 댁 안방에는 보일러를 너무 세게 틀어 동그랗게 타버린 자국이 남아있는 노란색 장판이 깔려있었다. 어렸을 적 우리는 그 뜨거운 장판 위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이불을 여러 겹 깔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힘들었던 가정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즐거웠다.


그 시절의 우리처럼, 양도영과 양지은은 다시 밤샘 수다를 떨어보려고 한다. 우리의 깊숙한 마음들을 때로는 실없는 이야기들을 당신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괜찮다면 같이 떠들어주기를.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밤새운 대화가 연재됩니다.






도영


아빠가 돌아가시고 지은이와 이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어? 그 시기의 변화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해.



지은


아빠가 돌아가실 당시에는 이미 분가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 시기에 많은 변화가 있지는 않았어. 그렇기에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실감 나지 않았던 것 같아. 아빠의 휴대폰 번호로 문자를 하면 며칠 뒤에 답장이 올 것만 같았어. 다만 그 시기에 엄마의 조현병이 더 심해졌기 때문에, 나는 부모를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지. 아마 엄마 역시 아빠가 돌아가신 후 무언의 슬픔이 커지며 병세가 악화되었던 것 같아. 알코올 중독자이자 아내에게 폭력적이었지만 딸에게는 따뜻했던 아빠, 살뜰하게 딸을 챙기던 엄마. 그 둘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서, 그 사실이 내게는 큰 상실감이었어.



도영


두 사람을 함께 잃어버린 기분이었구나. 네 마음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 알 것도 같아. 내게 알코올중독에 걸리기 전 이모부는 할머니 댁 마당에서 우리를 앉혀두고 무서운 얘기를 해주던 모습으로 남아있었어.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네게 친구 같고 재밌는 아빠겠거니 생각했던 기억이 나. 그리고 이모부의 중독이 심해진 후 술을 마시고 토하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 둘을 연결 지을 수 없었지. 사실 지금도 그 두 명이 다른 존재처럼 느껴져. 병을 앓기 전의 이모와 앓던 때의 이모, 그리고 많이 나아진 이모 역시 마찬가지고. 그 간극이 내게는 네겐 큰 상실감이었을 것 같아.


어떤 면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존재들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시간과 상황은 우리를 변하게 만들고 때로는 과거의 나 자신조차 매우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니까.



지은


맞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는데도 그 간극을 인정하기 쉽지 않더라. 내가 특히 엄마와 자주 다투는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을 거야. 우리의 평온하던 시절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나도 모르게 자꾸 어린 시절의 엄마를 찾게 되거든. 유년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정말 다른 것처럼, 우리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는데 그게 참 어려웠어. 그래도 이제는 조금 구분 짓고 있는 것 같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을 말이야.


언니, 아직은 무언가를 정의하기 어렵고 현재진행형인 이모부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어. 유년 시절의 가장으로 책임을 다했던 이모부, 외도로 인해 이모와 가족을 상처 입게 했던 이모부, 지금은 가족을 떠난 이모부… 다양한 모습 중 언니에게 일 순위로 떠오르는 이모부의 모습이 있을까? 미래에는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언니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해.



도영


현재로서는 ‘아빠를 생각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가 내 대답이야. 나는 아직 아빠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무언가를 덮어놓은 거대하고 무거운 천이 떠오르거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아빠를 대할 태도를 아직 찾고 있는 중이야. 아빠는 모든 일의 원인이자 가해자지만 나에게 다정하고 평생 자식을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인 것도 사실이니까. 아빠를 미워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용서해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어. 이모부도 지은이에게는 따뜻한 아빠였다고 했잖아. 지은이는 아빠를 어떻게 기억하기로 했어? 네 안의 아빠를 뭐라고 규정해?



지은


사랑하지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 죄악이 크기에 죽어서까지 원망을 감내해야 할 사람. 나는 아빠를 그렇게 규정해. 아빠는 나를 정말 사랑했어. 그렇기에 아빠가 우리에게 한 잘못을 원망하는 걸 인정할 거라 생각해. 아빠는 분명 우리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어.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야. 가끔 엄마는 아빠를 애틋하게 미화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어. 사랑하는 아빠를 원망하는 것은 내가 아빠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죗값이야.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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