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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Apr 13. 2020

엄마생각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엄마가 떠나고 일주일이 지난 뒤의 메모, 이 메모를 시작으로 글을 남기기 시작했었다. 꿈에 찾아온 엄마가 잠에서 깨어나니 날아가는 게 싫어서, 스쳐가는 생각과 감상들을 어딘가에는 모아둬야겠다 싶어 '나의 글'을 쓰게 됐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된 오늘, 나의 첫 시작을 떠올리다 이 글을 남겨본다.


본인 배 아파 나를 낳은 내 생일날, 엄마가 돌아가셨다.



무려 7년이라는 긴 암투병 생활을 끝내고. 내 생일 이틀 전, 그러니깐 엄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날. 결혼하고 처음 맞는 며느리의 생일밥을 차려주고 싶다던 시어머니는 엄마가 지내던 병원으로 찰밥과 미역국과 생선구이를 손수 싸서 보내주셨다. 이모랑 아빠랑 엄마랑 나랑 넷이서 병원침대 간이 식탁을 동그랗게 두르고 밥을 먹으려 할 때, 엄마는 여느 때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자 제안했다. 병실 환자들도 있고, 보통 때라면 그러지 말자 하셨을 아빠도 어쩐 일인지 흔쾌히 엄마의 제안에 응했고, 그렇게 우리는 불이 반쯤만 켜진 저녁 병실에서 올해 내 생일을 축하했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그게 본인이 축하해주는 나의 마지막 생일이었다는 것을. 이제 매해 생일을 눈물로 시작하게 생겼다.

혼자 병원 가기가 두려웠다던, 정말 큰 병이 걸린 거라면 집안 전체가 흔들릴 거라 두려웠다던 엄마의 예감은 적중했다. 이미 진행될 대로 진행되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답변을 들었고, 서울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 날 밤, 서울 고모네 집에서 둘이 누워 한참을 울었다.

그 뒤로 엄마는 악명 높은 독한 약으로 무려 15차에 걸친 항암을 이겨냈고, 한쪽 유방을 절제해야만 했다. 너무나 큰 희생이라 여겨졌던 수술은, 그러니 이제는 몸에서 암세포가 사라지게 해 주겠거니 했던 수술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 지루한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수차례의 주사와 더 여러 차례의 약 복용을 버텨내고 더 이상 혈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어 정맥으로 주사약이 퍼지게 해주는 케모포트를 삽관해야 했다. 엄마의 왼쪽 쇄골뼈에 버젓이 들어가 있는
인공물을 떠올리며 나는 또 한참을 울었다.

내가 조금 나이가 들기 시작하자 엄마는 나의
결혼을 서둘렀다. 챙길 게 많은 딸 결혼에 이것도, 저것도 챙겨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를, 그리고 그 일 년 후 오빠의 결혼식을 마친 후 엄마는 삶의 끈을 놔버렸다. 마치 삶의 과업을 다 끝낸 사람처럼.

이제 나는 무엇을 봐도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가 좋아한 다육이도, 조약돌도, 조용필의 노래 구절도, 이문세의 음성도, 젓갈 반찬도, 엄마의 손글씨도, 엄마가 신던 크록스 신발도, 마련해놓고 먹지 못한 식재료들도,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이모 도나쓰도, 맛있는 생선들도, 식욕이 떨어져 힘들던 때 입맛 돋우던 식혜도,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수리가 완공돼 엄마가 발 한 번 디뎌보지 못한 우리 2층 집도, 큰 맘먹고 샀으면서 포장 한 번 뜯지 못한 채 남아있는 화장품들도, 고작 한 계절밖에 입지 못한 내 결혼선물 코트도, 본인이 마음에 든다 골라 새언니에게 선물 받은 고운 이불도, 거금을 들여 맞췄던 예쁜 안경도, 너무 좋아했던 해안산책로도, 거의 매일을 들르던 동네 시장도, 맑은 하늘도, 흐린 하늘도, 따뜻한 바람도, 차가운 바람도. 모두 스쳐가기만 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마음을 아리게 해 울음이 왈칵 쏟아진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고, 내가 시작하려 한 것도 아닌 울음이 터져서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간병인이 엄마를 보는 게 죽어도 싫어 회사를 휴직했었다.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산을 떠나야 했던 아빠를 대신해 엄마 곁을 지키자고 다짐했고 엄마가 입원하는 날들은 병원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엄마가 잠든 어느 하루, 맞은편 침대 87살 난 할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냐는 간병인의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보고 싶어서" 그 말에 쉬이 잠이 들지 못하고 몇 시간을 울음을 삼켰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엄마가 보고 싶을까. 아직까진 실감이 안 나 어디 잠깐 여행을 떠나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엄마인데. 아직 못 본 지 일주일밖에 안 됐으니 딱 그만큼 보고 싶은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가 임신을 하게 될 때, 첫 아이가 태어날 때, 조카가 생겼을 때, 우리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고 말문을 틀 때, '할머니'란 단어를 알게 될 때, 초등학교에 가고, 교복을 입게 되고, 성인이 되고, 또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될 때, 대체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지 가늠할 수가 없어 나는 또 한참 슬퍼진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인 걸 알면서도, 의미 없는 '만약'을 붙여 나날을 고민해본다. 별 거 아닌 일에 '엄마가 있었다면'을 붙여 남은 가족끼리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시울을 붉힌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우리 나름으로 엄마를 붙잡는 이 시간이 슬플지언정 구태여 빨리 끝내고 싶지는 않다.

7년이라는 긴 투병 생활을, 마지막 3개월을 제외하고는 참 환자가 아닌 것처럼 생활해준 엄마였다. 복수 때문에 빵빵해진 배에 숨쉬기가 힘들었던 마지막 3개월도 여느 암환자와는 달랐다. 평소 어찌나 깔끔을 떨던지 다들 혀를 내둘렀는데, 그렇게 깔끔을 떨던 엄마는 신장이랑 간이 다 망가진 마지막 날까지도 기저귀 한 번을 안 차고 돌아가셨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지 않아 몇 만보를 걸어야 했던 일본 여행도, 뚜벅이로 다녀야 했던 제주도 여행도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행복한 추억을 남기는데만 전념했고, 평소 둥글둥글한 성격에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아 아줌마들끼리 하는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친척들 대소사도 시댁 친정 가리지 않고 늘 웃는 얼굴로 함께 했던 엄마였기에, 그 여느 장례식장보다 울음도 웃음도 넘쳤다.

날 좋은 따뜻한 날, 선선한 바람이 스치고 붉은 단풍나무가 눈 아래 머무는 곳에 엄마를 모셨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마음이 차고 넘치는 날,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 가는 길이 멀어도 거기까지 가는 길이 나에겐 마음을 정리하는 또 다른 시간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부디 자식이 철들 때까지 아프지 마시길'이라고 어느 드라마 작가는 이야기했다. 23살의 나이에 엄마의 병을 알아버린 못난 딸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철들어버렸다. 친구보다는, 남자 친구보다는 늘 엄마가 1번인 청춘이었다. 엄마와 보낸 마지막 한 달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 판단이자 결정이었다. 외롭지 않게, 남의 손 안 타고 엄마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임종 몇 주 전부터, 심해지는 황달기 때문에 온 몸이 간지럽다던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깨웠다. 새벽녘이 되면 더욱 심해져 밤잠 설치던 엄마는 혼자 견디지 못해 나를 일으켜 세워 손 안 닿는 등을 긁게 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에는 '죽어서도 네가 밤잠 설쳐가며 등 긁어준 거 다 기억할게'라는 유언 같은 말을 해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아이처럼 '엉엉'. 지금도 그 새벽을 떠올리면 눈물이 차고, 문득 숙연해진다.

의식이 없어져도, 임종 후에도 신체의 귀는 열려있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 결국 다 쏟아내고 보니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로 귀결되는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엄마 딸이라 행복했다는 이야기까지. 어쩌면 내 평생 엄마에게 건넸던 내 감정의 누적치를 훨씬 뛰어넘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했다. 평소 때도 사랑한다 고맙다 종종 이야기했지만, 죽음의 순간 앞에선 그 모든 말들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뻔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엄마는 나에게 너무나 좋고 사랑스러운 엄마였는데, 나도 엄마에게 그런 딸이었길 바라본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엄마를 들춰보고 끄적이게 될까. 사실 평생 그랬으면 한다. 무뎌지고 싶지 않다. 슬플 땐 울고, 생각날 땐 생각하고. 엄마가 저 세상에 가 있다 생각하면 너무 서글프니 잠깐 세계일주라도 갔다고 생각하고 지내봐야겠다. 담대하고 처연하고 씩씩하고 의미 있게. 그래서 훗날 엄마를 만나도 부끄럽지 않게.

그립고, 사랑하는 엄마가 날 늘 보고 있다 생각하면서.


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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