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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Apr 07. 2020

임신한 여자의 몸이 아름답다는 위로

결코 깨고 싶지 않은 클리셰

임신한 이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단연 내 몸의 변화다.



미디어와 SNS 상에서 그려지는 아름다운 D라인이라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매일 샤워를 하며 목격하는 신체의 변화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일단 아름다운 그 D라인은, 임신하기 전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탄탄한 여성의 몸의 연장선상에 있다. 팔다리와 얼굴선은 모두 그대로고, 원래도 몸에 축적되어있던 근육이 임신 이후 한없이 처지려는 살들을 붙잡아줬을 때만이 완성될 수 있는 라인이지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 쉬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제일 먼저 인지한 내 몸의 변화는 그동안 본 적 없이 커지고 색이 짙어지는 유륜이었다.
어렸을 때 목욕탕에서 마주했던 아주머니들의 것과 비슷한.
그때부터 두려움은 시작됐던 것 같다.

아직 출산을 한 것도 아니면서, 출산 후 가슴 처짐, 늘어지는 복부, 처진 팔뚝, 튼살, 허벅지 셀룰라이트 등등과  관련한 블로그, 맘 카페의 글들을 계속해서 클릭하며 맞이하지도 않은 두려움을 키워나갔다.
이제 더 이상 출산 전의 몸으로 돌아가기란 어렵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엄청난 운동과 식단 조절로 그나마 비슷한 쉐잎을 갖출 수는 있겠으나
옷이 벗겨진 나체의 몸은 결코 예전의 것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울감이 밀려왔었다.

임신한 여자의 몸이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임신부들을 위한 위로인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미화해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남겨두기 위함인지 잘 모르겠으나 요즘의 나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얼굴과 팔은 그대로인데 살짝 드러난 갈비뼈 사이로 위태롭게 팽팽해진 배는
간암으로 복수가 차올랐던 엄마를 생각나게 해 슬플 뿐이었다.

부른 배가 불편해 침대에서 뒤척일 때마다,
새벽에 깨어나서는 숨을 헉헉대거나 신경질적으로 본인의 불운을 하소연하던 엄마를 생각하며 참을 뿐이다.
쾌적하지도 않고 좁기만 한 병원 침대에서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 힘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나의 불편함 끝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란 아득한 기대로 지금의 불편함을 참아보자고 나를 달래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확실한 건, 임신한 여자의 몸이 아름답다는 위로는
얼굴에 유분이 많아지고 여드름이 올라와 마냥 예쁘지만은 않은
사춘기 소녀들에게 제일 예쁠 때라고 던지는 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꾸미지 않아도 인생에서 제일 예쁠 때이니 외모 걱정은 접어두라는,
정작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소녀들에게는 하나도 와 닿지 않는 ‘내 마음은 모르는 어른들’의 속 편한 소리.

시간 지나 돌아보니, 교복 입고 친구들과 까르르거리던 그때가 아름다웠다는 것도
사실은 추억으로 돌아봤을 때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풋풋함이 아름답다는 것이지
미학적으로 그 시절이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웠다고 자신할 수 있는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고 꾸밈에도 요령이 생긴, 그리고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되기 전인 이십 대 중후반의 본인이 제일 아름답다는 것은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다.

임신한 여자의 몸이 아름답다는 것도,
실은 그 몸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임신을 할 수 있는 그 시기의 생명력 자체에 대한 감탄일 것이다.

의도한 시기에 운이 좋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축복이 깃든 몸이라는 그 자체에 던지는 찬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짓 섞인 위로가
이 세상에 클리셰처럼 계속되길 원하는 이유는,
그렇게나마 만들어진 허상 같은 위로로 이 세상의 임신부들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클리셰에 힘입어 남편들은 아내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혹은 세뇌해볼) 수 있고,
아직 임신의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겐 임신과 출산이 한 번은 해 볼만한 경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할 수 있고
육아에 지쳐 소중한 임신 시절을 잊었을 엄마들에게는 나도 저 시절을 거쳐 지금은 더 단단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과 전혀 무관할 그 누군가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있어야만 이 사회가 돌아갈 수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저들에게 해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일종의 시민의식을 높여줄 수 있는 사회화의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불쑥불쑥 밀려오는 우울감을 극복하려면, 주변인의 시선이 변하길 바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바꾸는 방향이 제일 빠르다는 것을 안다. 냉정하게 말하면, 모르지 않았으면서 이 길을 선택한 내가 감내해야 할 고난일 것이다. 속절없이 나 스스로에게도 낯선 몸으로 변하고 있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내가 어떤 색의 안경을 집어 드느냐와 비슷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임신한 여자의 몸은 아름답다는 그 위로에 힘입어, 거울에 있는 낯선 몸의 여자에게도 조금의 세뇌를 걸어보려 한다. 누군가는 간절하게 겪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아쉬울 이 순간의 변화를 조금은 아름답게 바라봐 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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