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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Nov 12. 2020

엄마가 왈칵할 때

애도는 언제까지 이어지나요

그건 언제쯤 괜찮아져요?


지난달, 아끼는 후배의 어머니가 결국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을 함께 방문한 나보다 5살이나 어린 후배가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서는 나에게 물었다.


뭐라 탁 꼬집어 답하기 어려운 그 질문에 나는 어쩐지 구체적인 답을 내줘야 할 것 같아,

한참을 고민하다 "2년쯤..? 걸렸던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돌아간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나는 올해 초부터는 눈물도 많이 줄었고, 이틀에 한 번꼴로 꿈에 나오던 엄마가 작년부터는 그만큼 자주는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아 그 정도 걸렸다고 가늠해 내린 짧은 고민의 답이었다.


그러나 빈소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2년쯤이면 괜찮다고 답했던 나는,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음을 빈소 앞에 나와있던 후배를 마주하자마자 엉엉 울어버림으로써 보여주고 말았다.


'괜찮다'의 기준을 한참 타이트하게 잡은 대답이었다.


내가 답한 '괜찮다'의 기준은 적어도 공공장소에서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엄마가 생각 나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거나, 어느 순간 그로기 상태가 찾아와 일상을 멈춘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라 '괜찮다'였던 것 같다.


일상을 잘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마주하는 장면이나 단어에 목이 메이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괜찮지 않음의 기준이 된다면 나는 여전히 한참을 괜찮지 않다. 생각보다 쉽게 엄마가 왈칵한다.


엄마가 왈칵하는 순간을 일상에 들이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가장 큰 노력은 작정하고 엄마가 생각날 것 같은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82년생 김지영(어쩐지 다들 자기가 서러운 건 모르겠고 엄마 생각이 나 울고 왔다 했다)이 그랬고, 고백부부(극 중에서 장나라가 과거로 돌아가 죽은 엄마를 만난다, 너무 부럽다)가 그랬다.


그런데, 생각보다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들은 너무 여기저기서 깜빡이도 없이 들어와서 나를 울게 한다.


나는 원래도 눈물이 많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되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이다.


장기 기증자의 사망일을 어린이날로는 만들지 말자는 조정석의 대사에 나는 마음이 덜컹했다. 엄마는 어쩌자고 내 생일에 갔을까 싶어서.


자기 전, 엄마의 흔적을 좇을 때가 있다. 보고 싶다는 말의 대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절망감이 '애도'를 가장 짧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 아닐까.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를 밀어야 했던 엄마의 모습이 나는 제일 슬프다. 아빠가 출근한 낮시간, 혼자서 멍하니 거울을 봤을 민머리의 엄마를 상상하면 나는 언제든 울 수 있다.



사실, 저런 장면들을 백 번쯤은 만난 것 같다. 최근에 히든싱어 이문세 편 재방송을 보며 인생 처음으로 콘서트라는 것을 가보고 소녀같이 좋아하던 엄마를 떠올렸고, 병을 앓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를 딱하게 쳐다볼 손녀의 눈을 두려워하던 극 중의 김해숙 아줌마를 보며 나에게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달고 살던 엄마를 떠올렸다.


나름 '그게 괜찮아졌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틀에 한 번 꼴로 꿈에 나타나던 엄마가 이제는 덜 찾아와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멍하니 TV를 보다가 마주하는 장면에서 엄마가 왈칵할 때면 나는 매번 무너졌었다. 그래서 깨닫게 됐다. 임신 기간 동안 슬퍼지지 말자는 나의 강한 의지가 꿈속의 엄마를 더 이상 불러오지 않았었구나 라고.


엄마가 왈칵할 때. 처음에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바빴는데 어느 날은 그냥 감사하게 됐다. 이렇게라도 엄마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여전히 내 슬픔이 무뎌지지 않았음에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어져 그것대로 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울지 않으려 노력한다. 후배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집 앞 놀이터에서 후배와 통화하다 한참을 목놓아 울었지만, 집에 오자마자 딸아이의 기저귀를 갈며 슬픔을 잠깐 멀리 뒀다. 울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일상의 육아에 집중하다 보면 눈물에 집중할 틈 없이 웃게 된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 트림 소리를 듣고, 아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이없게 귀여운 행동들을 지켜보고 하면 웃음이 터져 나와, 한없이 극으로 내달리려던 감정도 어느새 중간치로 돌아오게 된다. 너무 깊은 애도에 빠지지 말라고 엄마 대신에 이 아이가 온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러나 나는 어제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 했던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무너져버렸다. 외삼촌이 오랜만에 보낸 안부 메시지에, 저번 달부터 내가 계속 염두에 두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기일'이라는 단어를 써버린 것이다. 단 두 글자의 단어에 압도돼서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가 떠난 날은 3년 전 그 날 '하루'였다. 매 해 같은 일자가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엄마가 다시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매해 울지 말자고 다짐을 해도 숫자에 부여된 의미는 어찌나 강력한지 엄마가 돌아가신 '11월'만 되면 나는 심장이 저릿저릿한다. '11월'이라는 달력 숫자만 봐도 엄마가 왈칵하는 것이다. 다시 그 날이 떠오르고, 엄마의 죽음이 다가옴을 통보받았던 내 생일 전 날이 떠오르고, 그럼 병원생활이 떠오르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기 전의 엄마가 떠오르고, 이랬으면 혹시 엄마가 오래 살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상념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슬픈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단어 한 마디에 눈물 흘리게 되는 걸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슬픔이 폭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이 작아진 건 아닌 것 같다. 슬픔은 그대로지만, 슬픔을 받아들이는 어떤 '예민함'만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답할 수도 있는 것일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고아이거나 고아가 되어가는 중이라던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고아가 되어가는 중인 모두는 어느 정도의 애도기간을 겪는지, 다들 언제쯤 괜찮아졌는지 묻고 싶다. 여전히 집안 곳곳에 널린 엄마가 마련해준 살림살이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을 하는 이상한 병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인지, 친할머니와 함께 있는 아이를 본 날은 엄마가 마음 한편에 걸려 밤이 되면 속이 상한 묘한 감정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나 저 물음의 답을 상상하다 나는 결론 내린다. 나아질지 모를 이 감정과 소회들이 사라지는 것이 곧 '괜찮아지는 것'과 동의어는 아닌 것 같다고. 사라지는 게 결코 긍정적인 감정의 노선은 아닌 것 같다. 없애는 것보다는 품는 게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새로운 역할과 새로운 연령대의 나를 마주할 때마다 엄마가 왈칵하겠지만, 왈칵 나에게 온 엄마를 껴안고 '엄마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의 영역에서 일상을 살아나가는 게 진짜 '괜찮음'에 닿는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이 조금 더 무뎌지고 나면, 언젠가는 엄마 생각이 사무칠 것 같은 영화나 드라마도 아무렇지 않게 찾아보고 마음먹고 엄마를 떠올리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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