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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Oct 08. 2020

엄마는 머리핀을 남기고 떠났다

엄마가 나의 딸에게 남겨준 작은 선물

배 속에 아기가 딸임을 알게 된 날, 내 생각은 온통 부산 고향집의 화장대 위에 쏠려 있었다.

'머리핀..! 잘 있겠지?'

잊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그 '머리핀'을 꼭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엄청나게 고가라던가 디자인이 에뻐서 그런 게 아니다.

그 머리핀은 엄마가 손수 만든 머리핀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감춰지지 않는 삭막함이 있다. 6인실 병실에서 환자들끼리 농담을 하고, 보호자들끼리 음식을 나눠 먹고 활기차게 지내려 해도 '언제 누가 먼저 가도 이상하지 않은' 환자가 모인 그곳에는 순식간에 덮쳐오는 죽음의 기운 때문에 마냥 밝을 수가 없다. 100명이 채 안 되는 환자들이 지내는 병동에서 오가듯 마주치던 사람들 중 누군가 사라져 가는 소리 - 주로, 다급한 의료진의 움직임 소리 혹은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느낄 수 있는 - 가 들릴 때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병실에 잠깐이나마 머물렀던 활기를 감춘다.  


그 삭막함을 의식적으로 깨는 것은 병동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호스피스 병동 봉사자 분들이시다. 삭막한 병실 생활, 편안한 죽음을 맞기 위해 모여 있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흘러가는 시간에 웃을 기회를 주려고 작은 프로그램들을 준비한다. 간단한 다과를 직접 만든다거나,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공예를 한다거나, 봉사자 분들 중 누군가 와서 기타를 치며 공연을 한다거나. 가끔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시는 분도 계셨다. 병원 밖이었다면 유치하다고 눈길도 안 주었을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 곳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추억을 만든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곳에서는 엄청난 축복이자 기회라는 것을. 죽음이 '정말로' 다가온 이들에게는  누구도 함께하자 권하지 않으니까.


이 머리핀은 그 시간들 중 어느 날에 탄생한 머리핀이었다.

엄마와 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함께 지냈던 한 달 중 어느 날, 이모까지 셋이서 호스피스 병동 사랑방 같은 용도의 공간에 앉아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이 머리핀을 만들었었다.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한 선택지는 없었다. 호스피스 병동 사회복지과에 할당된 예산 중 조금을 활용하여 누군가가 마련했을, 딱 봐도 절대 고급스럽지는 않은 헤어 액세서리용 장식 공예품들을 준비된 핀과 머리띠에 글루건 칠하는 것이 우리가 할 '공예'의 다였으니깐. 그래도 잠깐이나마, 통증으로 힘든 현재나 죽음이 두려운 훗날이 아닌 다른 '쓸데없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만드는 데 큰 공이 들어가지도 않은 이 머리핀은 지리멸렬한 병원 생활에 그나마 활력을 얹혀주는 30분 이벤트에 불과했다. 만들어진 결과물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 만들어 놓고서도 우리끼리는 되게 촌스럽다며 웃었고, 엄마는 농담처럼 "나중에 네 딸 생기면 해줘라"라고 만든 걸 나에게 다 줘버렸었다.

회색 그리고 베이지색 머리핀은 내가, 회색 머리핀과 검은 리본 머리띠는 우리 엄마가 '손수' 만들었다!


그런데 웬걸,  속의 아기가 정말 딸이라니..!

정말 어쩐지  아이가  나에게 와야만 했던 아이인  운명처럼 여겨져 엄마가 '점지'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출산 이후 조리원에 있을 때 아빠에게 연락을 했다. 경기도에서 주중에 근무하고, 주말이면 부산 고향집으로 가는 아빠에게 미리 연락해 엄마 화장대 위에 있는 잡동사니들 중에 '그 머리핀'을 꼭 챙겨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머리핀에 머리띠까지 아빠를 통해 전달받았고 우리 딸의 옷장에 여전히 잘 머물고 있다. 몇 달이 웬 말인가, 몇 년은 훌쩍 흘러야 겨우 해볼 수 있을 것만큼 크기가 크지만 옷장 서랍에 머리핀을 넣는 순간 우리 엄마도  딸에게 뭔가 남겨준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마음이 든든할  없었다.


만약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 엄마는 아마 지금쯤 우리 집에 와서 말 그대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사위에게 눈치가 보이면서도, 커가는 손녀의 모습을 하루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내가 집에서 노는 데 애기나 봐주겠다'며 너스레를 떨고 나와 함께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지만, 이제 본인 것은 관심 밖이고 손녀에게 사주고 싶은 것들을 한 아름 사서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날랐을 것이다. 누구보다 좋은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거란 걸 아는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한데 정작 내 손에 쥐어진 건 촌스럽고 이쁘지도 않은 머리핀뿐이라 울음 섞인 웃음이 난다.




사실 우리는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절차를 준비한다.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작게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더 크게는 '소유권'을 정리한다. 가족 중 누군가 떠난 이후에 그 사람이 머물렀던 공간을 정리하는 것은 감정 소모가 너무 큰 일이고, 소유권을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너무 복잡한 일이라 당사자가 살아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더 또렷할 때 미리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준비하지 못했었다. 조금이라도 혈색이 좋을 때 영정사진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는 친척 어른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나는 차마 엄마에게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진도 못 찍었는데 물건을 정리했을 리가. (사실 엄마가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부산 고향집에는 엄마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엄마가 '공식적으로' 나에게 남겨준  없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 중에서도, '이건 꼭 딸한테 물려주고 싶었으니 네가 챙겨야 한다'라고 일러준 게 없다.

엄마가 '남겨준 것'이 아니라, 엄마 일상 중에 '남겨진 것'들을 내가 조금 챙겨 오기는 했다. 유통기한이 있는 것들 위주로 '남겨진 것'들을 챙겨 와 내가 가져다 썼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엄마를 조금이나마 더 곁에 두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먼 훗날 손주, 손녀가 생기게 된다면 뭘 남겨줄 수 있을까?'까지 엄마 생각이 닿기는 했었을까.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로, 나는 이 촌스러운 '머리핀'에 의미를 붙여 위안을 삼고 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만약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그건 괜히 더 서러웠을 거라고.

할머니가 남겨준 거라곤 이것뿐인데 아들한테는 씌어줄 수도 없어 괜히 더 엄마가 보고 싶어 엉엉 울었을 거라고.


'남겨진 '들은 슬프다. 주인 잃은 물건들이 황망하게 자리 잡고 있는 화장대며 서랍이며 옷장이며, 열어볼 엄두가 안 나 슬프다. 그에 비해 '남겨준 ' 그나마  슬프다. 마음이 담겨있고, 대상이 명확한 쓰임새 있는 물건이 된 셈이니까.


농담처럼 엄마가 건넸던 "네 딸 줘라"는 말 한마디에, 이 머리핀을 엄마가 '남겨준 것'이라 생각하고 마치 엄마라도 되는 냥 소중히 여기며 지내고 있다.

언젠가, 딸에게 머리핀을 꽂아주는 날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남겨준 거라고 말할 날만 기다리면서.


딸아이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죽음이란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고 우리 엄마를 나의 딸에게 소개하는 것이 꼭 내가 할 일처럼 여겨진다. 그게 마치 내가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일처럼 생각돼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물건을 하나라도 남겨준 엄마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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