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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Apr 10. 2020

심장소리

마음이 벅차오르는 책임감


내 몸에 심장이 두 개가 있다는 신비로운 경험은 임산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내가 실제로 그 소리를 듣는 건, 병원에서 초음파 진료를 할 때뿐이지만. 이상하게 계속 마음 한 켠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난 심장 두 개야'라는 묘한 자부심(?)이 생긴다. 성인의 심장보다 1.5배 정도는 빨리 뛰는 작은 심장의 생명력은 경이로워서 처음 그 소리를 접했을 때는 마음이 벅차기까지 하다.




이제 갓 7주가 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은 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초음파 사진에 콕 찍어놓은 점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세포 덩어리가 내는
작지만 힘차고, 빠르지만 묘하게 안정적인 심장소리에 마음이 벅찼던 나는 이 황홀한 감정이 혹여나 날아가버릴까 누구에게라도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미 출산을 오래전에 경험했고, 사촌언니의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는 이모를 붙잡고서는 아직 일센치도 안 됐다는 데 심장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심장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벅차고 또 벅찼다는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했다.

이모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있었고,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라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할 수도 없는데 무슨 마음이 그렇게 급했는지 핸드폰을 붙잡고 십여 분을 통화했다.
착한 이모는, 버스 안이니 끊어야 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겪었을 보편적인 감상에 빠진 조카의 이야기를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다 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남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지금 엄마가 필요했구나.'
나와 같은 감정을 겪었을, 그리고 내가 편해 마지않아하는 통화 상대가 혹은 말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남편 혹은 아빠가 결코 완벽히 채워줄 수 없을 그 역할을 이모에게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속에 품어본 적 없으니 어리둥절하고 기쁘기는 해도 완벽하게 같은 경험을 해 본 적 없을 아빠와 남편보다는
같은 여성이고, 출산이란 것을 이미 경험한, 그리고 그걸 나의 일처럼 기뻐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이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모가 나의 엄마니까 이 소식을 꼭 먼저 전하고 싶었다'는 눈물이 날까 차마 전화로는 하지 못한 메시지를 보내니,
'우리 유경이 꼭 안아주고 싶은데'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떤 때에는 내 이야기를 마냥 들어주는 것만으로 고맙고 힘이 나는 이야기 상대가 있는 반면,
어떤 상황에서는 꼭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이에게, '이 일 정말 좋지 않아? 힘들지 않아? 잘 알지??'  등등의 '공감' 그 자체를 얻고 싶어 찾게 되는 이야기 상대가 있다.

나에게 있어 아기의 심장소리가 그랬다. 품어본 이에게 내가 경험한 경이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엄마가 아니어서 사실 많이 아쉽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앞으로 이런 날들이 한두 번이 아닐 게 눈에 뻔히 그려져 마음이 얼마간은 싱숭생숭했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이 그나마 조금 덜해지게 된 건,
뱃속의 아기가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이다. 사실 세상이 너무 험한 것 같고 걱정되는 요소가 많아 남편과 나는 아들을 가지고 싶어 했었다. (물론 이런 사고의 흐름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상이 위험하게 가면 세상을 바꿔야지, 성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명체에게 이 세상에서 살기 쉬운 성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억지이다.)

딸이라는 것을 알고 밀려오는 걱정이 기쁨보다 다소 컸던 건 사실이지만,
언젠가 이 딸아이가 커서
내가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엄마를 떠올렸던 것처럼 나의 공감이 필요한 순간이 언젠가 딸아이에게도 올 것이란 생각에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겼다.

그게 꼭 엄마로서의 나의 앞 날을 응원해주는 운명처럼 여겨져, 엄마가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자기 대신 딸을 보내준 느낌.




이제 34주 3일. 초음파 진료 때마다 듣는 심장소리이지만 여전히 그 소리는 경쾌하고 경이롭다. 몇 초 간의 소리로 인해 나 자신의 존재 이유에 스스로 확신을 가지게 되는 살면서 하기 힘든 경험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심장소리가 실제의 심장 움직임이 되어 내 눈 앞에 나타나는 날부터는 그것이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성큼 다가올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열리는 새로운 세상의 비밀은 여기에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책임감'. 그 감정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자극과 경험이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 새 세상이 열리는 게 아닐까.

오늘도 배 속 아기의 심장은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뛰고 있다. 작은 심장으로 제 몫을 해 내려면 큰 심장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야무진 목표가 있는 것마냥 숨 가쁘게 뛰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심장의 요동에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책임감을 조금씩 키워가는 일일 것이다. 그 소리의 속도 페이스에 맞추어, 내 마음 그릇을 키워보자는 것이 출산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다. 심장소리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 심장소리의 우렁참을 잊지 않고 늘 아기의 건강에 감사해하는 것. 내가 앞으로 평생을 유지해야 할 '마음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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