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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Apr 22. 2020

출산은 엄마의 엄마도 지나온 길

무섭지 않아요?


280days라는 이름의 국민 임산부 어플이 있다.

임신한 기간 동안 엄마 몸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지금쯤 아기는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이 시기의 아기는 어떤 발달을 하고 있는 중인지, 아빠는 이런 시기에 어떤 식으로 엄마를 위할 수 있는지 등등을 알려주는 엄청나게 유용한 어플이다.

특히 임신 초기였을 때는 진료를 받는 텀이 길고, 태동도 없고 배도 안 나와 ‘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 때에 이 어플 속의 아기 그림을 보고는 위안을 얻곤 했었다.


아기 그림을 터치할 때마다 아기가 나에게 하는 것 같은 말들이 나오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는데,

보통은 이 시기의 아기 상태를 엄마에게 이야기해주는 식이다. 그 와중, 엄마의 정서에 도움이 될 만한 말들도 나오는데, 처음 등장해 나를 당혹하게 한 건 사진 속의 저 말이었다.


“출산은 엄마의 엄마도 지나온 길, 무섭지 않아요!”


순간 화면에 등장한 저 한 문장의 글에 어찌나 얼었던 지, 출근 버스 안에서 저 문장을 마주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마도 호르몬 탓이었겠지만, 임신 중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마음이 요동치던 날들이었다. 설렘보다 걱정이 많고, 무작정 엄마가 보고 싶고, 사촌언니의 꿈에도 엄마가 등장해 나의 임신을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출근길에 울곤 했는데 딱 그 시기에 저 문장이 너무 선명하게 마음을 후벼 판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물어볼 엄마가 없는데...!!'


속절없이 감상에 빠져드는 밤과 새벽을 추스르고

그래도 감사할 것이 더 많은 인생임을 세뇌하듯 되뇌며 아침 출근길을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훅 들어오는 ‘엄마생각 모드’는 적절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 문장은 출산이 한 달여 남은 나를 아직도 따라다니고 있다. 안 보면 그만이지라고 넘겨버리기엔, 내게 있어 ‘엄마’라는 단어와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상상 그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어플 속 저 문장을 마주하며 오늘도 그때의 엄마에게 혼자 물어본다.

31년 전 지금의 엄마는 어떤 심경이었었냐고. 나처럼 두려웠냐고, 아니면 설렜었냐고.

그때 엄마의 나이 31살. 지금의 나보다 한 살이 어렸던 엄마는 다른 성별의 둘째를 가진 기대를 만끽하고 있었냐고.


그리고는 지금의 엄마에게 혼자 물어본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다면, 내 배 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걸 엄마는 알고 있냐고.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성품의 아이로 자랄지도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엄마만은 알고 있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물어볼 엄마가 없어서 가끔 눈물이 나는 내 마음도 아냐고.


불러온 배가 불편해 잠 설치는 새벽, 하늘이 어스름해져 나는 또 엄마가 고통에 잠 못 이루던 병실의 새벽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만큼이나 부른 배를 뼈만 남았던 엄마가 어떤 체력으로 감당했을지 가늠이 안 돼서.


편한 집을 놔두고 체력이 달리고 마음이 불안해 다시는 벗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사방이 하얀 생명력 없는 그곳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했던 엄마는 얼마나 좌절스러웠는지, 그래서 많이 슬펐는지 묻고 싶다.


끝남이 정해져 있는데도 이 사소한 불편함에 나는 밤잠을 뒤척이는데, 끝을 모르고 죽음 길로 접어들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었냐고,

질 게 뻔한 싸움에서 살아보겠다는 혹은 살아보고 싶다는 낮은 확률만 붙잡고 긴긴밤을 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묻고 싶다.


혹시, 그 병실에서라도 딸의 배에서 태어난 작고 소중한 손녀딸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간은 엄마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냐고,

아니면 안아보고 아껴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아 무기력함에 더 슬펐을 것 같냐고 묻고 싶다.


이제 곧 출산을 앞둔 내가 너무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게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아빠가 나중에 읽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어딘가에 숨겨놓은 일기장 한편에 써놓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엄마에게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는 내가 다시 기대 보는 건, 어플 속 한 문장이다.


‘오늘은 허리가 좀 이상한데, 속이 더부룩한데, 기분이 괜히 참 그렇네’ 했던 날들마다 어플을 확인하면 어김없이 내가 느낀 상태를 신기하리만치 맞췄던 어플이니깐.

수만 명의 임산부 데이터를 가지고 탄생시킨 어플일 테니깐, 세상 모든 엄마들이 출산일의 고통은 잊고 아기에게 온 마음을 내줄 만큼 기적 같은 사랑을 경험한 것을 어플에 담아냈을 테니깐. 믿어보려 한다.


어플 속 아기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를 속는 척 믿어보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아마 엄마도 그랬을 거라고,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네가 너무 예뻐서 다 잊히더라, 내 딸 ~“하고 나에게 웃으며 말했을 것 같으니 믿어보려고 한다.


출산은 우리 엄마도 지나온 길, 두렵지 않다고,

꼬물거리는 손발에, 엄마 미소 절로 나게 하는 배냇짓에 엄마가 또 생각나겠지만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내 방식으로 잘 지나가 보겠다고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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