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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Apr 24. 2021

엄마가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 무섭다

눈물로 얼룩져도 계속 나타났으면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와 관련된 꿈을 꿀 때마다,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아이폰에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었다. 오늘 몇 주 만에 '엄마생각' 폴더를 열어보니 그간 쌓인 메모가 124개. 엄마는 떠난 지 만 3년 반. 혼자 끄적이던 메모들을 조금 더 '들춰볼 만한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브런치도 시작하게 됐으니, 실로 내가 나 혼자 보는 글이지만 쓰게 된 건 10할이 엄마 덕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가 나오는 꿈 덕이다.


꿈을 자주 꿨다.

일주일에 2-3번 정도 엄마가 주연인 꿈을 꿨다. 개연성도 없고 스토리도 뒤죽박죽이고 어떤 날은 엄마가 아픈 모습이었다가, 어떤 날은 엄마가 젊은 모습이기도 했다.


꿈속에 나온 엄마가 아프거나 슬픈 이야기를 하면, 아침 시작이 눈물로 얼룩졌다. 비록 꿈 속이지만 엄마 모습이 건강해 보이거나 엄마 마음이 홀가분해 보이면 눈은 울고 입은 웃는 채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그래도 2-3일에 한 번 씩 엄마가 나를 찾아와 주던 때가 좋았던 건지, 지금이 나은 건지는 모르겠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은 내가 엄마가 된 이후에 많이 밝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돼서 일종의 '생활력'이 늘어난 까닭에 활기가 돌아 그런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임신한 이후 의식적으로 엄마 생각을 멀리한 덕에 엄마가 꿈에 자주 나오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임신기간 태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었는데, 엄마가 슬픈 드라마를 보며 울자 태동을 멈춰버리는 아기 초음파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내가 내 감정에 취해 흘리는 눈물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때부터였다. 엄마가 꿈에 뜸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건.


요즘은 주기도 줏대 없다. 두 달에 한번 나타나기도 하고, 또 그러고 2-3주 지나 나타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휘발돼버리는 것을 단단히 유념하고 있어서 꿈에서 깨자마자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핸드폰을 켠다. 깜깜한 밤, 작은 네모 불빛에 의지해, 그 불빛 때문에 힘에 겨워 눈을 찡그리고 홀린 사람처럼 양 엄지를 움직인다. 그렇게라도 붙잡아 두고 싶어서.


엄마 없이 엄마가 되니 이것도 슬프고, 저것도 슬프지만 종일의 육아 듀티를 끝내고 멍하니 침대에 누웠을 때 예정에 없이 엄마가 생각나면 걷잡을 수 없이 슬퍼진다.


엄마가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 무섭다. 내가 그만큼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설명하기 힘든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올해 초에는 이런 꿈을 꿨었다. 새벽녘에 남긴 메모를 그대로 옮겨본다.


"눈물이 맺힐까 하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 너에게 짐 정리를 맡겼다.
눈물이 맺히겠지만
당당하고 자기답게 하자."

똑같은 꿈 내용이 두 번 반복됐다.

 회사 동기들이  나오고
친구도 나오고 우리 딸도 나오고 친구 딸도 나오고

모두가 다 같이  캠프 같은 것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을 찾아 이행하는 식인데

나를 마지막으로 안내한 것은
모두가 몰래카메라처럼 몰래 준비한
엄마의 짐 정리 시간이었다.

엄마의  앞에는
오빠가 앉아있고
저렇게 편지를 웃으며 덤덤하게 읽어 내려갔다.

눈물이 맺혀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들어 올렸는데

불교대학을 다닐  입던
회색 옷을 입은
젊은 모습의 엄마가
거기  있었다.

이게   만인지...

와르르 넘치려던 마음을 추스르고
 시간의  기억을 힘겹게 붙잡고 붙잡아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마지막 장면만을 기록한다.

이렇게 하고 나면   오래 기억에 남겠지.

엄마 일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꿈에 나와줘서 고마워.
오늘은 울면서 깨지는 않았어요.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엄마가  우는 거 질색하게 싫어했었으니

 울려고 노력할게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21.01.09 am 06:09


무슨 의미인지도 가늠이 안 되는 꿈에서,

엄마가 남겼다는 편지 멘트와

1초 정도 나오는 엄마의 모습을 집착하듯 붙잡아 메모에 남겨뒀다.


다들,

얼마나 오래,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꿈에서 만나는지 궁금하다.


다른 가정의 자녀들보다 너무 짧은 기간 엄마 꿈을 꾼 거면 어쩌나, 생전 해본 적도 없는 다른 집안 자식들과의 비교를 엄마가 떠나고 난 뒤에 의미 없이 해본다.


엄마가 꿈에 자주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눈물에 얼룩져도 좋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나의 한 켠을 애석하게 만든다.


'실망하지 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엄마였는데,

점점 엄마 생각을 덜 하게 되고, 엄마를 꿈에서 덜 마주하게 될 나를 상상만 해도 실망스럽다.


그러지 않고,

엄마를 마음에 잘 안은 채로

내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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