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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껏빛나는 May 08. 2021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엄마에게

향할 곳 없는 마음을 써봐요

엄마, 오늘은 어버이날 전 날이에요. 어버이날에 엄마를 보러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부쩍 엄마 생각이 많이 나 며칠 전 울다가 밤을 지새웠어요.


그냥 울고 지나가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내 마음을 엄마가 알 길이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써요.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가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는 건 정말로 시간이 오래되서인지, 아니면 그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서 그게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져서인지는 알 길이 없네요. 자주 편지하지 못해 미안해요.


나는 그동안 참 바빴어요.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두려움이 앞서 미뤘던 임신을 하게 되고 건강한 아이를 낳았거든요. 임신한 동안에 엄마가 사무쳐 힘든 날들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럴 땐 꼭 글을 남겼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땐 꼭 바닥에 엎드려 일기를 쓰던 엄마를 생각하면서요. 아기가 세상에 나오고 난 이후로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을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네요. 엄마라면 당연히 알겠죠. 하루하루 복닥거리며 바쁘다가, 저녁이 되면 맥이 풀려 버리는 묘한 기분 좋음을요. 그리고 꼭 다음 주 오늘이 우리 딸의 첫 번째 생일이에요. 내일 모레,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딸의 첫 생일을 축하할 자리에 엄마 대신 이모가 온다 생각하니 몇 일이 슬펐어요. 아마 엄마가 우는 걸 봤으면 엄청 혼냈을 정도로요.


그래도 너무 속상해 하진 마세요. 이제 엄마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왈칵해 아무 곳에서건 눈물이 나던 그런 시기는 지났거든요. 그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고 매일 울기만 하면 어쩌나 걱정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막상 그러지 않는 나 자신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해요. 정말 엄마와 함께 병동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엄마 이외의 것은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던 날들이 있었는데, 어느덧 내 인생에는 다시 엄마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특히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면 늘 엄마에게 미안해져요. 얼마 전에도 좋은 마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옷 한 벌을 선물하고서는 마음이 슬펐어요. 내가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사준 옷은, 복수로 가득 찬 배를 감당할 외출복이 없어 말도 안 되게 큰 사이즈로 샀던 옷이었거든요. 그 외출복을 입고 한 외출이 엄마와 내가 한 마지막 외출이었단 사실을, 그마저도 마음껏 하지 못 하고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끼니도 대충 때우고 집으로 돌아가야 해 실망했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한참을 울 수 있어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설명할 수 없이 기뻐지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매일 마주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피곤한 몸을 달래고 싶을 땐,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눈치를 하나도 보지 않고 몸 내키는 대로 한숨 내리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눈치 보지 않고 징징댈 수 있는 친정엄마가 절실한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만약 엄마가 건강했다면, 나는 얼마든지 늙은 엄마의 손을 빌리려 했겠죠. 훨씬 젊은 몸과 체력을 가졌으면서도 말이에요. 그래서 정말 출산과 육아가 우리를 철들게 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우리를 철들게 한다기보다는 얼마간의 인내심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우리를 철들게 하는 것은 사실 부모의 로-병-사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라 말했던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말이 요즘 참 많이 생각나요.


어떤 날에는 이렇게 일찍 철들어버린 내가 싫기도 해요. 눈물을 꾸역꾸역 참고, 내 눈물임에도 주변 사람들의 형편에 맞춰 흘리게 된 내가 슬퍼요.


대부분의 순간 잘 참는데 딸아이 앞에서만은 참기 힘든 순간들이 더러 생겨요. 어쩔 수 없나 봐요. 딸아이가 잠든 늦은 밤의 방은 너무 많은 생각으로 이어지거든요. 그 생각의 끝엔 늘 엄마와 함께했던 병원에서의 한 달이 있어요. 그래서 꼭 한 번은 울게 돼요. 아직은 아기가 말도 못 하고, 슬픔을 알 리 없는 지금을 마지막으로 여기고 울자고 한바탕 눈물 후에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해요.


며칠 전엔, 아파서 밤새 끙끙대는 아기를 보며 나는 엄마 생각이 나 울 수밖에 없었어요.

새벽 내내 통증에 힘겨워 앓으면서도 딸의 안위를 살피고, 보살핌 받는 것을 미안해했다가, 이성이 통증에게 져 짜증을 쏟아내기를 반복하던 엄마가 떠올랐거든요.


그렇게 아파하던 엄마를 떠올리다, 엄마의 마지막 육성이 "와이래 안 죽노"라고 작게 내뱉던 음성이었던 것을 생각하며, 더 큰 고통에 잠식되지 않고 깔끔하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일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 엄마의 마지막 복이었다고 결론 지었어요.


그래서 나는, 엄마가 거기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곳은 적어도 죽음을 기다려야 할 정도의 고통은 없을 테니까요. 그곳에서 잘 지내면서 손녀딸 모습도 잘 지켜보고 있어요? 나는 물론, 지금의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마음인지 알 길이 없겠죠. 나는 그냥, 어느 날 엄마가 우리 딸이 세상에 나왔음을 알지 물었더니 배 속에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장모님은 이미 다 아셨을 거라 하던 '엄마 사위'의 말을 믿어보려 해요.


내일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너무 귀여운 우리 딸을 데리고 엄마를 보러 갈게요. 엄마 딸이 예쁜지, 엄마 딸의 딸이 더 예쁜지 한 번 봐줘요. 아빠를 통해 전해 듣는 나의 어린 시절은 너무 단편적이거든요. 그 시절, 나의 하루를 책임진 건 엄마였을 테니 '아기인 나'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건 오로지 엄마 한 명인데, 물을 엄마가 없어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우리 딸의 모습을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지켜보고서는,

일 년 동안 너무 고생했다고,

어버이날 이렇게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생각해주세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와 닿기를, 이렇게 글로도 남기고 소리 내어 읽을 수도 있지만 향할 곳 없는 나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엄마에게 가 닿기를 바라요.


잠든 딸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나는 오늘도 병실에서 새근새근 아기 같은 모습으로 자던 엄마를 떠올려요. 그래서 여전히 나의 밤들은 조금은 고요하고 울적해요. 그럼에도 내일의 내가 괜찮을  있는 , 까닭도 없이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내뿜는 엄마의 손녀 덕이에요. 엄마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을 용기를 준 엄마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해요.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출산의 가장 큰 이유였거든요. 그렇게 얻은, 크나큰 기쁨이에요. 엄마에게 나도 그런 존재였기를, 이제는 정말 확인할  없는  시절 엄마의 마음이, 반드시 그러했었기를 마음으로 바라봐요.


내일은 어버이날이에요.

슬프지만 기쁜 마음으로 엄마를 보고 오려해요.

엄마도 나를 꼭 그렇게 봐주세요.

내일 만나요.



-엄마가 사랑하는 딸 유경이가

21.05.07 pm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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