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여름
검정치마의 음악에 병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수년 전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마음으로 사랑했던 그녀와도 검정치마의 음악에 대해 논하는 순간이 잦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검정치마’라는 뮤지션은 일종의 암호와도 같다. 내가 과연 이 사람과 건강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저급한 불확실함 앞에 놓였을 때, 내가 꺼낸 검정치마의 음악 이야기에 상대방이 화들짝 놀라며 반가운 기색을 보인다면 그제야 걱정 없는 사랑이 시작되는 거다.
그만큼이나 검정치마의 음악은 내 삶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맙게도 나의 흉측한 삶의 모양을 조금도 늘리거나 깎아내지 않고서 고요히 흘러준다. 핀잔을 주거나 쓸데없는 동정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음대로 소원해졌다가 이기적인 얼굴로 불쑥 찾는대도 불평 한번 않는 고마운 친구처럼.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검정치마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도, 그의 음악을 들을 때도 마치 내가 여름 속에 풍덩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내가 검정치마를 가장 처음 접했을 때가 팔월, 그러니까 무더운 여름의 중심부였기도 했거니와 그의 음악이 내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옛 애인과의 농밀했던 교제 기간 또한 여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멀쩡한 들숨 한번 얻어내기 벅찰 정도로 후덥지근한 열대야도, 작열하는 팔월 한낮의 새붉은 태양도 그의 음악 앞에서는 그저 곡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는 알맞은 배경에 불과해진다. 그리고 이따금 내가 옛 애인을 생각할 때면 그의 음악 또한 별수 없이 애절한 배경음악으로 전락하고야 마는 거다. 야속하게도 우선순위가 명확한 탓에 나는 문득 옛 애인을 떠올릴 때면 당연한 듯 검정치마를 찾게 되고, 어디선가 검정치마의 음악이 들려올 때도 주워 담듯 황급히 옛 애인을 떠올리게 된다. 도무지 벗어날 방도가 없는 지옥 같은 굴레이자, 딱히 애써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미천한 생명의 굴레.
그러는 나는 이번에도 그의 새 EP가 발매된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물컹한 기분으로 오늘까지 힘겹게 퍼져왔다. 이제는 이 소식을 누구와 함께 나누며 울컥하는 마음을 뽐내야 하나, 하는 걱정이 하루가 가는 속도보다도 한참은 앞선 탓이다.
물론 지금도 검정치마의 신보에 함께 기뻐할 사람들(내가 집착 수준으로 검정치마의 곡을 지겹도록 들려준 결과 검정치마의 팬이 되기로 결심한 이들)이 주변에 몇 있기는 하다만, 그녀만큼 미친 듯이 달아오른 표정과 말투로 춤을 추듯 그 기쁨을 함께할 만한 이들은 결코 아니다.
이것 참, 새 앨범 수록곡의 노랫말 중에 하필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숲 안에선 찾을 수 없죠. 그녀는 그렇게 가로지른 후, 불태우고 난 그냥 이해해야 하는 입장인 거죠. 이제 여기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겠지만.’이라는 대목이 있는 건, 우연과 운명 중에 어느 쪽이 더 어울릴까. 하긴, 지금 내가 이 곡을 들으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 그녀 또한 분명히 어딘가에서 같은 곡을 듣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아무렴 상관은 없다.
이제 나는 또 그해 여름으로 갈 참이다. 그렇게 떠난 곳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더는 여한이 없을 것이다. 나는 늘 죽고 싶을 때마다 검정치마의 곡을 듣고 했었으니까. 그 말인즉슨, 그녀를 떠 올릴 때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숨이 턱, 하고 막혀오곤 했었다는 말.
나는 검정치마가 죽을 만큼 밉지만, 이 음악들이 없다면 더 이상의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과 같으니 어쩔 도리 없이 또 여름으로 간다. 안녕, 하는 인사와 함께 당분간은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열대야에 압도될 것이다. 벌써 무덥다. 온몸이 땀으로 뒤덮여 나는 꼭 물고기가 된 것도 같지만, 어찌해도 유연하게 헤엄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