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태완 Jun 18. 2021

연락 주파수


  문득 오늘 새벽 내가 겪은 묘한 일에 관해 쓰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사건으로 쳐주기도 애매할 만큼 사소한 일일 테지만, 나에게만큼은, 그러니까 적어도 그 새벽 좁은 침대에 몸을 뉘었던 나에게만큼은 쉽게 넘기기엔 퍽 날카로운 감각이었다. 시계가 오전 네 시를 가리킬 때쯤, 나는 여느 때처럼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평소 나의 취향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추천해 주는 위대한 알고리즘답게 재즈와 클래식, 그리고 여러 포크송라이터들의 공연 라이브 영상 등이 차례로 휴대 전화 화면에 나타났다.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대는 새벽이었던 터라 나는 그에 걸맞은 영상을 고르기 위해 검지로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다 어떤 영상 하나를 발견한 나는 순간 멈칫하며 화면에서 손가락을 살짝 떼었고, 조금 우습지만 나를 멈추게 한 그 영상의 제목은 이러했다.


  연락 오는 주파수. 들으면서 자면 정말로 연락 와요.


  연락이 온다는 것은 이걸 들으면서 자면 내내 기다렸던 연락이 온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이별한 옛사랑의 연락이 될 수도 있고, 간절한 면접 합격 통보 전화일 수도 있고, 반년이 넘게 팔리지 않던 중고품 거래 전화일 수도 있는 건가 싶다가도, 영상 제목에 ‘기다리던’이라는 말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반대로 기다리지 않았던, 그러니까 피하고 싶었던 연락이 올 수도 있다는 건가 하는 마음에 쓸데없이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영상 하단의 파란색으로 쓰인 작은 글씨가 또 한 번 눈에 들어왔다.


  댓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증한 연락 주파수.


  절대로 이따위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겠으니 댓글이나 한번 둘러보고 가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창을 화면에 띄웠고, 순식간에 쏟아진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무거운 마음을 가슴께에 얹어둔 꼴이 되고야 말았다. 이는 사실 생각지도 못했다기보다는 얼핏 예상이야 했겠지만, 고작 이까짓 영상 플랫폼 댓글에 올라온 이야기들 따위에 동요하지 않으리라 자만했던 나 자신에 대한 창피함 같은 것이었다.


  개중에는 정말 이 미신을 믿고 싶어지는 사연도 있었고, 이 사람에게만큼은 이 미신이 유효했으면 싶었던 사연도 있었다. 전자는 그 어떤 소원보다도 간절히 소망했던 옛 애인으로부터의 연락이 이 영상을 시청하던 도중에 정말로 왔다는 내용이었고, 후자는 아빠, 내가 이런 것까지 찾아보면서 무척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늘 밤 꿈에는 꼭 나와 줬으면 좋겠어. 막내도 티는 안 내지만 아무래도 아빠가 많이 보고 싶은가 봐, 라는 내용의 세상을 먼저 등진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삽시간에 내 시선을 앗아간 또 하나의 댓글.


  사실 이 주파수 음악엔 아무런 효능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 영상을 보며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강한 마음이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게 아닐까요?


  맞다. 간절함이다. 이 정도 논리라면 나 또한 합리화 조금 섞어 이 영상을 믿어 봐도 되는 게 아닐까. 결코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의 간절함까지 무시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그래. 나는 어차피 잘 때 들을 음악이 필요하던 차고 이 주파수 음악은 퍽 잔잔하고도 부드러운 소리들로 채워져 있으니 새벽 내내 틀어놓아도 손해는 아닐 테니까. 나는 재생 시간이 7시간 남짓한 그 영상을 그대로 틀어둔 채 휴대 전화의 볼륨을 적당한 크기로 낮췄다. 그리고는 그것을 머리맡에 놓아두고서 깊은 잠을 청했다.


  눈이야 진즉 질끈 감고 몸을 축 늘어뜨렸지만, 머릿속은 이미 수많은 잡념들에 의해 지배당한 지 오래였다. 참 오지도 않을 연락이란 걸 알면서 기어코 이걸 틀어놓은 나 자신이 무서울 지경이군. 그나저나 그 사람들 참 좋겠다. 누군가가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며 이런 영상을 찾아 들을 정도라니.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들에게 열등감을 잔뜩 느끼고 있던 찰나에 별안간 휴대 전화의 화면이 밝아지면서 두 번의 진동이 크게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연락 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연락 주파수에 대한 기대감은 몽땅 잊은 채로 휴대 전화를 무심히 집어 들었고, 도대체 이 시간에 연락을 해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만약 그 사람이 내가 연락 주파수 영상을 보고 들으며 일말의 기대감이라도 갖게 했던, 내가 재회하기를 그토록 염원했던, 나의 글에 지나치게 잦은 빈도로 등장하곤 했던 여름 같은 그 사람이라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헌신적인 사랑의 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