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만날 터인데
당신 원대로 나 죽지 않고 살았으니
그대는 찰나의 불볕으로 내게 오라
그러면 나는 흐릿한 여생에 탐스럽게 영글고
푸르고도 길차게 뻗어 자라
꽤 오래도록 죽음을 등질 마음 있으니
이름 없는 무덤을 두 팔 뻗어 안으면
그 주인 살아생전의 기억들이
싱싱한 생명처럼 내게 온다 했다
그러니 당신 죽음의 이름을 깨끗이 지우고
나는 그 벅찬 생을 모두 이 속에 품어
너인 듯 나인 듯 두 개의 삶을 살련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곧게 누운 음울한 봉분에
둘이서 즐겨 마시던 술을 휘휘 던져 붓고 나는
즐거웠고 사랑했으며 당신을 동경했어요 했다
뒤도 없이 끊겨버린 당신 삶 하나
야윈 가슴께에 품어 가져왔을 뿐인데도
눈 앞에 펼쳐진 황무지가 아름다웠다
나는 더없이 평온한 미소를 움푹 지었다
봄볕이 하얗게 머리에 앉았고
내 붉은 입술이 파르르 열릴 준비를 했다
그래,
이 모든 게 살아있는 당신에게
생생히 전하고픈 이야기다
_
<당신 없는 황혼의 끝자락에서>, 하태완
2020. 4. 28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