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태완 May 11. 2020

물망초의 꺾인 꽃말

나를 잊어도 되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내 시의 팔 할을 집어삼킨 사람아
끝끝내 증발하지 않을 눅눅한 나의 과거야

억수같이 쏟는 비를 한줄기씩 헤아리는 것으로
저릿한 당신 환영 그동안만이라도 먼발치로
저 먼발치로 보내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소란했던 시절은 여태껏
용케 죽지도 않고 귓바퀴에서 웅웅거립니다

물망초의 꽃말은 날 잊지 마세요

나는 남겨진 삶의 기로에서 만난
물망초 한 떨기를 양심의 가책도 없이 꺾고서
이 꽃은 내가 손수 꺾었으니 이제 그 이름과 말은
그대가 꺾으세요 하며 터덜터덜 걷습니다

물망초의 꺾인 꽃말은 날 잊어도 되어요

슬픈 생각이 눈가에 주렁주렁 열리는 것은
나조차도 어쩔 도리 없는 일이겠으나
잔뜩 주린 마음을 채우는 데에
잘 익은 슬픈 생각만 한 것도 없으니

세상모르고 꺼이꺼이 우는 것으로
더는 갈 곳 없는 당신 생각 우리 집으로 들여와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망초의 꺾인 꽃말>, 하태완

2020. 5. 10 씀.

작가의 이전글 나물 무침만 먹으면 죽을 수 있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