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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y 15. 2020

유월의 끝자락에 열리는 어떤 문

수풀이 우거진 곳


수풀이 우거진 곳을 문득 목격하게 되었을 때면
꼭 신비한 차원으로 가는 문이 열릴 것만 같다

날개가 내 이 손바닥보다도 큰 나비가
꽃가루인 듯 널리 비행하며
섬처럼 아득히 멀어지는 곳이

색이 퍽 선명한 노란색 비단을 두른
산새 두어 마리가 코끝 같은 가지에 앉아
연인들 웃음처럼 가물가물 지저귀는 곳이

바람에는 싱그러운 향이 아이처럼 업혀있고
내가 기지개를 켜면 온갖 드높은 나무들이
푸르른 이파리를 파르르 떨게 되는 곳이

내가 숨어들고픈 문장들의 길고 긴 호흡이
잠깐의 가빠짐도 없이 견고하고 다정해지는 곳

이 모든 황홀이 자그마한 대가 없이도
내 오감에 들어앉아 편히 짐을 풀 세계가
여행처럼 아무도 모르게 시작될 것만 같다

입김으로도 바스러질 듯한 눈엽 위로
이름보다 치명적인 웃비가 안착한다
머지않은 유월 예고편의 방문 같은 것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여름은 멈추지 않을 테니

여기, 이곳이 끝끝내 유월 끝자락에 가닿고
끊임없을 것 같은 장마가 급기야 숨을 뱉으면
틀림없이 신비한 차원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_
<유월의 끝자락에 열리는 어떤 문>, 하태완
2020. 5. 1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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