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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Sep 26. 2020

정말 아주 많이 좋아해

필사적으로 서로를 탐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깍지 끼워 잡는 것을 좋아한다. 그 애틋한 품에 아기처럼 폭삭 안기는 것을 좋아하고, 눈을 지긋이 맞추고서 시도 때도 없이 키스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빛도 사물의 윤곽도 흔한 자동차 경적도 차가운 에어컨 바람도 없는 곳에 벌거벗은 채로 함께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맨살을 마음대로 부대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내 곧 강한 침묵이 드리우고, 수백 년 전부터 잊지 않고 품어 온 약속을 이제야 지키려는 듯 필사적으로 서로를 탐하는 일.
  사랑을 하려거든 반쯤 미친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을 내내 곱씹는다. 다소 익살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너를 깔깔거리며 웃게 만들고 싶다. 이제 보니 너는 참 바보 같다고, 어떻게 그렇게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는 말을 들어도 마냥 좋을 테니.
  가끔은 너를 내 바로 앞에 앉혀두고서, 나는 그저 깡충 뛰는 일 한 번으로 저기 저 멀리 우주까지도 갈 수 있다고 우겨대볼까. 그러는 너는, 나의 시답잖은 농담에 네 능력은 고작 그뿐이냐고,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한겨울에 여러 송이의 수선화를 틔울 수 있다고 말해주려나. 너는 농담도 어떻게 그렇게 낭만적이게 할 수 있어? 역시 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맞아, 라는 말을 던지는 건 언제나 내 쪽이 되려나.
  이러한 나의 이상주의적 사고에 네가 청색의 반기를 들지 않기를. 내가 너의 보드라운 가슴께에서 목격한 사랑의 초월적인 이데아는 영영 불변하리라 확신하니까. 감히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오감의 촉을 전부 한 곳에 집중해야만 그제야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귀한 감정이 우리 사이에 실재한다고 분명히 자신한다.
  지금의 나는 결코 보기 좋고 맛만 좋은 사랑을 추구하지 않는다. 1년 365일 내내 예쁘거나 멋지고, 매혹적인 향으로 나를 휘청이게 하는 사람을 병적으로 멀리한다. 내가 나 스스로 미치광이를 자처하게 되는 사람. 굳이 나를 넘어뜨리려 애쓰지 않아도, 내가 먼저 제 발에 걸려 털썩 주저앉게 되는 사람. 그러다가도 내가 보기 흉하게 무너지려 한다면, 금세 내 옆으로 와 편안한 품을 열어주는 사람. 내가 만약 생전 처음 가는 추운 나라에서 가진 것을 모두 도둑맞고 길을 잃는다면, 너무 늦지 않게 장작이 밤새도록 활활 타는 벽난로가 되어주기도, 고급 호텔의 침실 못지않게 편안한 팔베개를 내어주기도 하는 사람.
  그러니까 나는 나와 당장에 뜨거운 연애를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보다, 서로의 작은 일상을 은은하게 공유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사람이 좋다.
  누군가는 이러한 나의 이상향을 ‘절대 실현 불가능한 지나친 허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구하는 사랑에 계속해서 살을 덧붙이는 일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이지 않나. 또한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이러한 나의 이기적인 바람을 전부 수용해줄 것을 강하게 믿고 있다. 혹여 전혀 아니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찌 됐든 지금 우리가 별 탈 없이 만남을 잘 이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마냥 긍정적인 신호가 되는 거니까.
  나는 계속해서 반쯤 미친 사람처럼 너를 사랑 할 테고, 두려움 따윈 한 줌도 섞지 않은 조심성 없는 사랑을 하려 들 것이다. 부디 나의 시시한 농담을 정말 시시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내가 가끔 내뱉는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말을 정말 비현실적이라 여기지 않기를.
  너를 위해서라면 한여름에도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일 만큼의 많은 눈이 쏟게끔 할 수도 있다는 이 말을, 그저 쉽게 내뱉은 장난으로만 생각하지 않기를.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신기한 사랑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의 오랜 꿈의 일부분이 되어 줄 수 있었으면. 정말 아주 많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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