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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Sep 30. 2020

이 가을, 문득 만나 뵙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낡은 편지


  이 가을, 문득 만나 뵙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안녕하세요. 미숙하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작가 하태완입니다. 곧 다가올 추석 연휴를 핑계 삼아 이렇듯 낡은 편지 한 통을 쑥스럽게 부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이제는 꽤 많이 쌓인 모양입니다.

  군 복무를 시작한 지도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곳에서도 각양각색의 사계절을 모두 겪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문장들을 많이 발굴해냈고, 그것들을 수 편의 글로 풀어 제 것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늘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티 내지 않고 수시로 속을 헤집고는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들 중 단연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탄생케 하는 일이 가장 힘겨운 일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타인의 손에 의해 잘 쓰여진 글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그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찾아오고야 마는 심한 열등감에 밤이 새도록 몸부림치는 일도 허다합니다.
  어딜 내놓아도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을 글을 쓰고 싶습니다. 보다 탁월하고 그 모양이 묘하게 신비로운 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필히 지금보다 한결 나은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부디 그 고될 여정에 수천 번의 힘듦은 있을지라도, 단단하게 가로막힌 한계가 떡하니 버티고 있지는 않기를. 모든 과정에 독자분들의 자상한 걸음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최근 들어 제가 써 올리는 글의 대부분이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온 마음을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 섬세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에 들이면서 생기는 미족한 감정들을 한시라도 빨리 글로 풀어내고 싶어 미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의 분위기나 문체 등, 저의 글을 이루고 있는 온갖 요소들의 온도가 한층 높아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내내 축복받아야 마땅한 현상 앞에서도, 저는 마냥 행복에 겨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찌 보면 ‘고작’일 작은 고민거리 하나가 잦은 빈도로 저를 괴롭히고는 하니 말입니다.
  저는 저 스스로가 아무리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에 흠뻑 빠져있다 한들, 더 넓은 시선으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아직은 불완전하고 농익지 않은 저의 부족한 능력 탓이겠지만, 더 많은 독자분의 휘청이는 감정을 글로써 치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지나치게 앞섭니다. 두 마리 토끼를 조금의 희생도 없이 모두 잡고야 말겠다는 심보인 듯한데, 아무래도 이러한 일은 저보다도 월등히 현명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택지인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에게는 퍽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제 삶에 몇 없을 이 황홀을 마음껏 만끽하고 실컷 사랑하며 그와 엇비슷한 글만을 쓰겠습니다. 언젠가 제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불쑥 온다면, 그때는 또 정말 물기가 느껴질 만큼이나 침울한 분위기의 글이 소낙비처럼 무한히 쏟겠지요. 일단 지금은 제 앞에 놓인 이 사랑에 열중해야겠습니다.

  내년 이맘때 즈음에는 저의 차기작이 출간됩니다. 전작인 <모든 순간이 너였다> 출간 이후로 4년 만의 신작이 되는 셈인데, 이 정도로 긴 공백기에 걸맞은 글을 담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줄곧 제 책의 편집을 담당해주셨던 허주현 편집자님과 다시 한번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들키고 싶지 않은 저의 부족함을 잘 메꿔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감정과 더 무거운 계절감을 담아 독자분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준비하겠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 그간 이곳에 올린 글에 달린 댓글들을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독자분의 응원과 그들이 터트리듯 쏟아 내고 간 일상, 차마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무거운 슬픔과 함께 방방 뛰어주고 싶은 기쁨들이 한데 모여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저의 시선을 단숨에 앗아가고는 기어코 눈시울이 붉어지게끔 만든 댓글 하나를 목격했고, 저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몇 번이고 그 흔적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일본 독자분께서 남겨 주신 댓글이었는데, 아무래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저의 책을 접하신 것 같았습니다. 독자분은 저의 글 덕에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다고, 당신의 글이 나의 꿈을 지지해주었다고, 당신의 글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목숨을 구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제가 정말로 사람의 목숨을 구했을 리 만무하지만, 그만큼이나 선한 영향력을 글로써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애틋한 일이 아닐는지요.
  이 자리를 빌려 먼 타국의 독자분들과 한국의 독자분들 모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한분 한분 만나 뵙고 서로의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쳐있을 때, 독자분들의 응원이 저에게 이 사회의 일원으로써 멋지게 살아갈 기회를 준 것입니다.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앓는 소리 않고 계속해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제가 독자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박씨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이, 사실은 냉랭하고 혹독한 현실에 맞서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고된 하루의 끝에 이 낡은 편지 한 통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기를, 수십 개의 상처 중에 단 하나라도 씻은 듯이 낫게 한 치유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힘이 닿는 한, 제가 갈피를 못 잡고 휘청이는 당신 걸음에 한 줌의 용기가 되겠습니다.

  이 가을, 드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 사이에서 자주 뒤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막 지나간 여름과 저 멀리 보이는 겨울을
벌써부터 그리워하며

2020년 가을,
하태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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