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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Feb 10. 2021

연인으로 가는 길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건 생각보다 가슴 아려오는 일이다. 누군가를 좁아터진 이 마음에 욱여넣는 일을 결코 얕잡아 봐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나와 성질도, 색깔도, 그 흔한 냄새까지도 완벽히 다른 존재를 겁도 없이 내게 들인다는 것은, 필히 내가 가진 것들 중 대부분을 내놓아야만 한다는 의미와 같을 테니까.

  그 사람의 사진을 내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흔해 빠진 사랑 노래를 흘려듣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언어와 몸짓을 조심히 관찰해보는 자잘한 움직임만으로도 단번에 널찍한 균열의 아가리 속으로 추락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다 그 사람이 내 심장께에 둘러놓은 울타리 안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나 거대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손쉽던 호흡을 잃게 되는 것쯤이야 집중할 만한 사건으로 쳐주지도 않게 되는 법이다.

  그러는 나는 이 글이 폴짝폴짝 가닿게 될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하기 이전에는 필히 빈틈없는 준비를 적당히 취하라 일러주고 싶다. 터지듯 뿜어져 나와 쉴 새 없이 줄줄 흐르는 감정을 쉬이 절제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치기 어린 걸음으로 불쑥 나아가게 된다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에 휩쓸려 산산이 부서져 버리기에 십상일 것이다. 늘 그래왔듯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 앞에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종이 인형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늘 영원할 것만 같던 정겨운 곳의 푸르른 강물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자신의 생사를 장담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랑을 담은 들뜬 마음 또한 언제든지 거짓말처럼 텅 비어버릴 수도 있고 원하지 않던 차오름에 흠뻑 잠겨 죽어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사뭇 경직된 이들에게 있어서 뜬금없이 찾아온 사랑은 위험천만한 도전이자 해괴한 시험인 것이다.

  사랑을 두려워 말되, 필히 경계하고 조심스럽기를. 한 치 앞이라도 꼭 섬세하게 살피어 절대 그 발을 헛디디지 말기를. 당신의 사랑은 늘 경쾌한 음악이기를. 당신 깊은 슬픔의 종말이기를. 당신의 어리숙한 손금에 얽히게 될 인연들은 한시도 빠짐없이 찬란한 백색의 봄만 같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일그러진 마음과 삶에도 깊은 행복과 수명이 긴 온기가 깃들기를. 부디 건강한 사랑에 당신의 새붉은 심장을 기꺼이 건넬 수 있게 되기를.


<연인으로 가는 길>, 하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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