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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Dec 01. 2020

지난 사랑 이야기

낭만적인 우리가 이 초겨울에는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되돌아가보고 싶은 애정의 순간이 있다. 왠지 모르게 지난번과는 다른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이ᅥᆼ일 때가. 죽어도 돌아갈 수 없어서 더 멋대로 상상할 수 있는 순간.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깊게 팬 생채기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아물게끔 한다.  지난 사랑의 아픈 이야기가 이 커다란 지구에서 오직 단ᄃ만 아는 비밀이라 생각하면 문득 애틋해진다. 자주 찬란했으며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풍성한 애정이 떠다녔고, 때때로 각진 말들을 삼켜 속이 쓰라렸던 그 이야기들. 내 시간이 아무리 흐른대도 그 사건들을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그 사람 또한 길을 걷거나 밥을 먹다가 불현듯 우리의 삶이 ᆫ 줌씩 겹쳐졌던 찰나를 떠올리곤 한다고 생각하면 퍽 아련해진다.  멀어질 듯 좀처럼 멀어지지 않았던 날들도 어느덧 재작년에 쏟아졌던 소낙비처럼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그 사람의 젖은 ᄂ동자도 이제는 선명히 그려낼 방도가 없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여겼던 것들이 그 끝을 기점으로 조금씩 잊히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수명을 다한 별처럼 기록에서조차 사라지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어차피 모두 소멸해버리고 말 행복 아픔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그때 조금 더 저돌적이고 더 진득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이제 와 뒤적거려봤자 손끝만 아려오는 미련일 테고, 그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한들 어차피 헤어졌을 우리였겠지만.  삶이 너무 버겁고 더는 지칠 몸과 마음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나는 늘 지난 사랑을 애써 떠올리려 하는 편이다. 그렇게 곳곳에 숨어있는 시간을 한 조각씩 찾아내고 끈적이는 어떤 것들로 조각 난 시간을 퍼즐처럼 제자리에 맞춰 넣다 보면, 참 그것만으로도 계속 살아갈 힘을 얻곤 하는 거다. 한때는 나도 누군가의 사랑이었으며 위로였고, 한 생명의 온갖 진심을 온몸에 두르고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이 절반은 아름다워진다.  비록 우리는 무작정 사랑했고 그 탓에 그렇다 할 준비도 못 한 채로 헤어졌지만, 찢어질 듯한 고통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낯가림 심한 오랜 사랑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 역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지쳐 앉아 쉬고 있을 때, 그 앞의 나무와 나비와 낙엽과 구름과 바람과 햇빛 중 아무것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때를 회상해줬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자그마한 위로라도 수확하기를. 살굿빛 위로 알갱이 하나 꿀꺽 삼키고서 나처럼 꿋꿋하게 살아내기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과 입가에 드리우는 옅은 미소, 그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겨울볕과 펄럭이며 비행하는 늙은 이파리들, 홀로 걷는 저 사람과 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사철나무, 이름을 채 묻기도 전에 몸을 숨기는 노을과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풍성한 달이, 같은 곳에 둔 하나의 사랑으로부터 아주 느리게 멀어지는 낭만적인 우리가 이 겨울의 초입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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